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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00908

푸른밤파란달 2020. 9. 8. 23:09

본가의 내 방 벽에는 몇가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붙어 있었다. 머리맡엔 코팅된 대형 영화 포스터 크기의 아파치 헬기 사진이 있었고, 침대가 붙어 있던 벽면에는 박효신 부산 콘서트 포스터와 <킬러들의 수다>, <매트릭스>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박효신 부산 콘서트 포스터는 서면에서 구. 베스트 프렌드와 만났다가(아마도 영화를 봤겠지) 128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옛 한전부지의 공사장 가림막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떼어 온 것이다. 여러장 붙어 있는것을 한장 뗄까말까 하고 있으니, 구. 베스트 프렌드가 그중에 제일 깨끗해보이는걸로 떼어 주었다. 우정이란, 참 쓸데없는데서 용감하다.

 

<매트릭스> 포스터는 하이텔 이벤트에 당첨되어 비디오테이프랑 같이 받은것이었는데, <킬러들의 수다>는 영 출처가 기억이 안났다. 막 열광하면서 좋아하던 영화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같이 붙어 있는건지... 너무 오래되어 자연스럽게 그냥 거기에 붙어 있었다. 언젠가, 잡지의 부록으로라도 받았나보다 하고 말았다.

 

오늘은 옛날 기억과 싸운 날이다. 분명,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기억의 왜곡"이라고 단정하는 사람과 조금은 힘빠지는 이야기들을 하고, 저녁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별로 뒤져보고 싶지 않은 옛날 메일들을 들춰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것은 참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꽤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메일까지 뒤지게 되었고, 거기에 아주 오래전 하이텔의 "따르릉~ 초보방입니다" 의 다음 카페 공지메일을 발견하여, 바려진듯한 카페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나름, 나는 핵심멤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쩐일인지 "손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올린 글들을 쭈욱~ 읽어보다 보니 대학친구들과 카페에 갔다가 그곳 2층의 비디오방 입구에 붙어있던 <킬러들의 수다> 포스터를 친구들이 떼어준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봐야 그 친구들이 성우나, 준기, 병윤이 이런 애들일텐데, 걔네들이 그걸 떼줬다고?? 뭔가 상상이 안되는 그림이지만 거짓말을 적어놓지는 않았을테니... 2002년도의 우리들은 그랬나보다.

 

옛날 메일들을 읽어보니, 이제는 이름만 기억나는 애들, 이름도 얼굴도 전혀 모르겠는 애들과 주고 받은 메일들, 기억이 가물가물한 동호회 사람들과의 메일... 그래도 옛날엔 메일이 꽤 괜찮은 소통의 수단이었구나... 일상의 평범한, 아니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소식을 전한 많은 메일들을 읽고 나니 여기저기 긁힌 마음들이 괜찮아지는듯도 하다. 

 

역시, 기록이란 참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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