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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홍합 5kg

푸른밤파란달 2021. 4. 8. 23:28

지난달 말, 어머니 생신 때문에 본가에 갔다가 부추를 한 봉지 얻어 왔었다. 원래 내 몫은 아니었고, 동생네 가져가라고 베어놓은 것을 올케가 이것저것 다른 것 얻어 가면서 깜빡한 것을 내가 들고 왔다. 나는 상추나 쪽파가 좋은데...

 

한 일주일을 그냥 모른 척 냉장고에 뒀다가, 이러다가는 다 상해서 버리겠다 싶어 날 잡아 손질하고 일부는 부추 장아찌를 담고 일부는 부추전을 부치기로 했다. 홈플러스엔 아이들 손바닥만 한 손질 오징어 3마리가 8천원 쯤 했다. 어쩔까 하다가 그래도 오징어라도 넣어야 맛이 있지 않을까, 깐 홍합도 한 팩 샀다. 그러고 보니 부재료만 이미 만 원이 넘어갔군. 

 

청양고추와 홍합을 다져 넣고 오징어 몸통 하나와 다리 세 마리 분량을 다져 넣고 전을 잔뜩 부치니, 끝도 없이 들어가는 마법이...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서 입에 걸리는 것도 없고 매운 것도 딱히 모르겠던데 밤 새 속이 아파서 고생한 건 안 비밀. -_-; 어머니표 부추전은 홍합을 잔뜩 다져 넣는것이 특징인데, 나도 오징어 대신 홍합만 많이 사서 넣을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주문했다. 홍합 5kg. 대구에 잠깐 살던 아파트가 읍 지역의 애매한 위치여서 신선 재료를 살 곳이라고는 일주일에 한번 아파트 안에 펼쳐지는 간이시장이 전부였다. 그래서 가끔 홍합을 사다가 (아마 2kg쯤) 오후 내내 손질하고 데쳐서 알을 다 골라내고 데친 육수는 미역국과 카레를 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홍합 껍질 처치하느라 비닐 봉투에 여러겹 싸서 욕실에서 발로 뽀각뽀각 부수던 기억도...

 

겨울 내내 홍합을 좀 사다가 데쳐서 건조기로 말릴까 말까 했었다. 시판 말린 홍합은 너무 바싹 말라 있어서 어지간히 불려도 딱딱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해산물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택배로 주문해서 간혹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망설였다. 특유의 비린내를 싫어하는 것도 있고.-_-;;

 

여튼, 주문을 했고 판매자가 같이 채워 넣어준 얼음이 녹지 않은 채로 택배가 왔다. 손질 홍합이라 그런지 족사가 너저분하진 않았는데 싱크대에 쏟아붓고 비벼보니 물이 금방 지저분 해진다. 서너번 비벼씻었다.  5kg 양이 대단해서 큰 냄비 3개에 끓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박물관 수업 하는 날이라서 정신이 없었다. 홍합이 끓지도 않았는데,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어버렸다.

 

겨우 박물관 수업이 끝나니 오후 4시. 길어진 해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홍합을 다 정리했다.

 

전처럼 그냥 두꺼운 택배봉투에 넣고 발로 밟을까 하다가 언젠가 인터넷에 본 것처럼 껍질을 정리했다. 이렇게 해서 하루 놔두니 물기도 바삭 말라서 그냥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면 될 듯 하다. 홍합껍질이 날카로워서 손 다치지 않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_- 검고 반질거리는 홍합껍질에 내 상상력이 더해지니 징그러워서 쳐다보기가 싫어진다.

 

 

 

까면서 몇 알 입에 넣어보니, 맛이 달다. 설탕같은 단 맛이 아니고 신선한 해물의 달큰한 맛이 꽤 좋았다. 알은 생각보다 얼마 안되서 건조기를 돌리는 대신 그냥 나누어서 냉동하기로 했다. 한봉지에 150그람씩 나누어 담으니 4봉지와 통 만큼 남았다. 통에 든건 미역국 끓이기 위해 냉장실로, 지퍼백은 냉동실로 갔는데 냉동실 사정이...건조기를 돌릴걸 그랬나 싶었다.

 

 

문제는 육수였는데 홍합이 잠길 정도만 물을 붓고 끓였는데도 페트병으로 여러 병 나왔다. 냉동실에 넣을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다. 냉장실에 서너 병이 있다. 그리고 한 냄비의 미역국. 마침 미역도 남은 양이 좀 애매해서 다 불렸더니 미역 양이 많아서 벌써부터 처치할 것이 걱정이다. 자취하는 친구들은 모조리 서울에 있으니 주변에 나누어 줄 만한 사람도 없다.

 

불려서 여러 번 씻은 미역을 참기름 두 스푼에 볶고, 홍합 육수를 잔뜩 넣었다. 마늘 한 스푼을 넣으니, 간을 안했는데도 맛이 좋았다. 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했다. 역시 좋은 재료로 한 음식은 별다른 양념이나 조미료가 필요 없다. 문제는 양이 너무 많아서 버리지 않고 끝까지 다 먹을수 있으려나...

 

남은 홍합 육수는 된장찌개 끓이면 좋을것 같지만 한 냄비의 국이 있으니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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