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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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0200627

푸른밤파란달 2020. 6. 27. 20:33

아침에 박물관 뒷뜰에 다녀온 날이, 날짜를 보니 벌써 5일이나 지났다. 정신차리고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백수의 삶이란, 때론 너무 무의미 하기도 하다. 그날 아침에 간만에 카메라 어플을 실행 시켰으니, 사진을 어디에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나 하고 포토웍스로 편집했는데, 가로세로의 비율이 이상하네. 다시 다운받아서 리사이징 하기엔 매우 귀찮으니, 좀 거슬리더라도 대충...

 

 

7시쯤, 집 주차장에서 차를 빼면, 늘 갈데가 없다. 공영주차장의 빈 칸에 옮겨놓고 집으로 와도 괜찮지만, 보통은 오래 세워 놓는 편이니 운전대를 잡으면 조금이라도 움직일려고 노력한다. 역병의 영향으로 어디 가기도 애매하고, 늘 집에서 뒹굴다 보니 차로 30분 이상 가야 되면 아주 먼 곳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엔 연지공원에 가서 책이나 좀 보고 올까 했다. 어어...하는 사이에 차선을 잘못 들어서고, 출근길에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하기도 좀 미안하다. 그래서 그냥 차선대로 움직이다 보니, 그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어버버 하다가 공원 주차장에 못 들어가고(아마, 딱히 공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으로 갔다. 작년에 상반기, 하반기 가야학 아카데미를 듣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들르던 곳을 오랜만에 가니 새롭기도 하다. 강당 뒷편에 모란이 한무더기 심어져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는데, 지금은 모란이 다 지고 없다.

 

 

주차장의 병꽃나무 울타리에 딱 한가지 꽃이 맺혀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가면 흐드러지게 피어 있겠지.

 

 

 

 

멀리 능소화가 꽃이 몇송이 피었길래, 그쪽으로 가다보니 아래쪽에 보이는 공중전화 부스에 풀이 무성하다. 박물관은 청소 하시는분도, 시설관리 하시는 분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저거 일부러 저렇게 놔둔건가 한참을 봤다. 뭔가 잡초가 아닌걸까?

 

 

아직 꽃봉오리들만 잔뜩이고 꽃은 몇 송이 피지 못했다.

 

운전을 해오면서 경사가 급한 사거리 근처에 울타리 가득 능소화가 만발한 것을 봤기에 수로왕릉 능소화도 아마 활짝 피었겠거니 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요렇게 만나네. 불과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저 능소화 색깔이 요사스럽(!)게 느껴져서 그닥 좋아하는 꽃이 아니었는데, 뜨거운 여름 연일 계속되는 장마비에도 꽃을 피우니 대견해서 좋아한다. 여름내 피고지고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꽃이 상처를 잘 입고(지저분해보일 때가 많다.) 꿀이 얼마나 단지 벌레들이 심하게 꼬이는것이 단점이다. 화려하게 담장 가득 피어 있으면, 사진발이 잘 받아서 한 장 찍어볼려면 경쟁이 너무 치열한 것도 조금은 싫은 점. (사진발 잘 받아서 싫다니, 나도 참...)

 

 

 

 

꽃 아래 피워보지도 못한 봉오리들이 잔뜩 떨어져 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서 사진 찍고 돌아서니 내 몸이 조금만 스쳐도 후두둑 떨어졌다. 아, 미안...-_-;; 

 

구름 하나 없는 초여름 하늘이 어쩐지 숨막힌다. 아직은 아침이 제법 시원했는데, 곧 해가 뜨자마자 30도씩 찍어대는 날이 올것을 생각하면 우울해질수 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매미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부터 시작이다. 롤러코스터가 낙하하기 위해 착착 최고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을때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주차장 한 켠에 석류나무가 있다. 석류꽃도 능소화같은 주홍빛인데 조금도 붉은 기가 있어서 산뜻하고 귀엽다. 나무에 새끼손가락만한 꽃들이 잔뜩 달린 모습을 보면 참 예쁜데, 제일 예쁜 시기는 좀 지난것 같고 꽃도 많이 떨어지고 몇 없었다.

 

 

 

자세히 보니, 아... 석류꽃 색이 옅어지면서 엉덩이가 통통해지고 열매로 변하고 있었구나. 늘 이맘때면 기력이 없어 문밖 출입을 안하다 보니 기억속의 석류는 진다홍의 자잘한 꽃과 커다란 석류만 있었다. 볼록한 모습이 묘하게 쭈꾸미나 새끼문어같다.

 

 

며칠전에 내린 비로 바닥에 떨어진 꽃들. 하나하나가 석류가 될수도 있었는데! 

 

나리 꽃도 두어 송이 피어 있었는데, 이쯤 되면 여름꽃들은 다 색깔이 비슷비슷한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꽃도 꽃이지만 저 윤기나는 잎도 요맘때까지가 딱 예쁜 초록인것 같다. 

 

 

 

작년까지 강의를 듣던 강당 뒷편으로 가면 경사가 진 곳에 커다란 벚나무와 낮은 철쭉 울타리, 맥문동 같이 것이 가득 심긴 언덕이 있다. 처음 박물관이 오픈한것이 20년도 전이다. 그때는 산책로도 철쭉 울타리도 없고 벚나무 몇그루 있는 잔디동산이었다. 이제는 남남이 된 (구) 베스트 프렌드와 김밥을 싸와서 소풍왔던 기억이 있다. 따뜻한 봄날이었고 우리처럼 소풍 온 사람들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친구 어머니가 싸준 김밥을 먹었던, 내가 좋아하는 기억이다. 아마 지금보다 조금은 말랑했던 시절이라 그럴지도. 

 

오래된 벚나무 아래에 벤치 두개가 있어서 그곳에 자리 잡았다.

 

벤치에 앉아서 올려다본 하늘. 이렇게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 거리는걸 좋아하는데, 한번도 그 느낌 그대로 사진에 표현된 적이 없어 아쉽다. 망원렌즈로 찍으면 좀 더 예쁘게 나올려나... 사진보고 괜히 또 망원렌즈 가격한번 검색해보고 왔다. (오늘 올린 사진들이 전부 폰으로 찍은것은 안비밀. 카메라 충전한지도 오래다.)

 

 

포토웍스 정말 이러기야? 오랫동안 써왔지만 이런 비율로 리사이즈 된적이 없는데... 아마 처음 써보는 액자탓인가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니, 뒷목으로 햇볕이 뜨겁게 꽂힌다. 나무 아래라고 방심했다. 언덕을 한 칸 더 올라가서 맥문동 근처의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왼쪽은 철쭉 울타리고 오른쪽으로 멀리 치자나무 울타리다. 이때부터 휴대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는데, 치자꽃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지.

 

 

싸구려 향수 같이 지독하기도 하고, 싫다고 하기엔 묘하게 좋은 것도 같고...치자향은 참 미묘하다. 그리고 한나무에 흰꽃과 노란꽃이 같이 피네...

 

자리에서 고개 돌리면 보이는 치자나무 울타리. 빛이 강해서 잘 안보이는데, 하얀 점점이 들이 다 꽃이라서 향이 진했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는 맥문동잎이 무성하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새소리가 다 들린다. 사진을 찍다가, 새소리를 듣다가... 최대한 멍하게 있을려고 노력했는데 난 그게 잘 안된다. 새소리 듣고 앉아 있는데 머리속이 좀 시끄럽다.

 

차에 책이 두권 있었는데, 집수리 할때 읽은 언어의 온도 와 이 책. 언어의 온도는 다 읽기도 했지만, 야외에 읽기엔 너무 딱딱한것 같고 반쯤은 읽다 만 이 책을 들고 갔다. 표지가 눈그림이라서 시원한데, 반쯤 읽다가 팽개쳐둔 덕분에 책갈피부분부터 읽어도 모르겠어서 서너페이지 앞부터 다시 읽었다.

 

책속의 은섭같은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았던 대략 한 700명 정도의 남자들을 대입시켜봐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 어쩜 한명도 안 떠오른다. 그래도 억지로 비슷하고 갖다 붙이면 상석선배 정도 될려나. 그런데 그 선배는 전혀 정적이지는 않단 말이지. 아무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것 같은 은섭이 참 마음에 든다. 조근조근 조용할것 같은 성격이나, 책을 좋아하는 모습같은것.

 

호랑나비 한마리가 근처에 날아왔을때는 이미 배터리 방전 상태라 사진은 못 찍었고, 오랜만에 호랑나비를 가까이에서 본 걸로 만족한다. 밀려오는 졸음을 피해 근처 마트에 들러서 치즈케익을 사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낮잠을 실컸 잤지.

 

나간김에 수로왕릉까지 들를까 하고 근처를 두 바퀴쯤 돌았는데 주차할 곳을 못 찾고, 너무 햇볕이 뜨거워 포기하고 말이다. 조만간, 수로왕릉과 능엄사까지 묶어서 능소화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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