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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장어의 추억

푸른밤파란달 2020. 7. 4. 09:25

정확히는 바다장어 이야기다.

 

1. 아주 어렸을때, 엄마가 말했다.

"우리집 애들은 왜 회를 안 좋아하는거야! 봉구네는 애들이 도시락 회 사오라고 난리던데."

옆동네에 아버지 친구분네 집 아이들 이야기다. 그때는 동생도 나와 같이 회를 안 먹어서 어쩌다가 외식을 해도 횟집에 갈수 없었던 엄마의 하소연(?)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도시락 회" 라는 것은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긴 "아나고 회"였다. 도시락도 하얗고, 회도 하얗고... 가끔 부모님이 포장해와서 드시는걸 봤다.

 

 

2. 국민학교 다닐때, 엄마가 오일장에 가면 가끔 짐꾼으로 따라가곤 했다. 동생이야 데리고 가봐야 눈에 보이는건 다 사달라고 하니, 별 요구 사항이 없는 나를 데려가는것이 편했을것이다. 난전 여기저기를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어물전을 들러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어물전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거기가 횟집앞이었다. 어렸을때부터 비위가 약했던 나는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물을 피해 한구석에 짐들을 다리 사이에 끼고 서 있었다. 아... 아저씨가 수조에서 뱀같이 길다란 생선을 잡아서 커다란 나무도마 한 곳에 뾰족하게 올라온 못에 콱 찍어서 고정 시켰다. 그 순간 부터 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면서 토가 올라올것 같았는데, 그럴 사이도 없이 아저씨는 빠른 손길로 오른쪽 팔을 번쩍 들었는데 생선 껍질이 쭈욱 벗겨졌다. 아아... 이건 아니잖아... 머리가 어질어질 한데, 뭘 어떻게 한건지 어느새 아저씨는 하얀 스티로폴 도시락에 회를 담고 있었다. 다시는 회 따위 먹지 않아야지.

 

 

3. 그렇게 나는 회를 못 먹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정말 맛있다는 말로 억지로 회를 쌈에 싸서 입에 넣어 주셨는데 하필 그게 세꼬시였는데  뼈가 씹히는 그 느낌은... 웬만하면 입에 들어갔던 것 뱉어내지 않던 나도 버티질 못하고 다 뱉어내고 말았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를 좋아하니,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여러명이 식사하는 자리가 횟집으로 결정되면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주로 곁들이로 나온 땅콩을 까먹거나, 데친 새우를 까먹거나. 일행들이 좀 배려해주면 오징어숙회나 소라숙회 같은것을 따로 시키기도 했다.

 

 

3. 대학교 1학년때, 학생회 행사를 끝내고 회장선배와 소수 정예 멤버로 다대포 횟집으로 회식을 갔다. 일단 나는 회를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억지로 먹게 권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선배가 횟집 근처 슈퍼에서 커다란 새우깡 한봉지를 사주었다. 그리고 회가 나오고 다들 회를 먹다가, 회장선배가 나를 보고 빵 터졌다. 내 표정이 야만인들을 쳐다보는 것 같다고 했다. -_-;; 그런 적 없다. 그냥 저걸 무슨 맛으로 먹나 했을뿐.

 

 

5.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절반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터다 다 같이 만나기가 쉽지 않아 기장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한정식을 갔으면 했지만, 직장 생활에 지친 친구들은 곰장어가 먹고 싶었는지, 유명한 짚불곰장어집에 가기로 했다. 

"괜찮겠어?"

"불에 익힌거잖아. 날 것으로 먹지만 않으면 뭐..."

곁들이 음식도 훌륭하고, 그간 각자의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 없는데 갑자기 여자 사장님이 시꺼멓고 길다란 것을 들고 왔다. 

"으아아아악~~~" 

내 비명소리에 사장님도 깜짝 놀라고, 친구들은 웃음이 터졌다. 아니, 나는 손질되어서 짚불에 초벌되어 나오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지, 통으로 시꺼멓게 그을리다시피 구운 그 무언가를 들고 와서 바로 옆자리에서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보여줄지는 몰랐다. 그러니까 길다란 그 모양 그대로. 그야말로 뱀-_-;;의 형상. 

 

 

6. 조카들이 커가고, 그 녀석들이 회를 좋아하니 나의 입지는 더 좁아져서, 최근에는 다 같이 모이는 가족 외식은 계속 횟집이다. 작년에 아버지 생신 즈음 다시 기장으로 곰장어를 먹으러 갔다. 다행히 손질되어 나오는것을 숯불에 구워 먹는것이라고 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8명중에 7명이 바다에서 나는 것을 좋아하니, 어쩔수가 없다. 손질된 장어들이 접시에 담겨서 나오는데 벌써부터 보기가 좋지 않다. 꼭 머리까지 같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배가 갈라지고 손질까지 다 되어 있는데, 녀석은 살아 있는지 단순한 근육의 반응때문인지 조금씩 꿈틀거리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불판위에 올리는것이 조금은 죄책감이 들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조카들은 그저 그 녀석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어찌 징그러워 하지 않는 거지. 엄마의 강권에 다 익은 장어를 몇 점 집어먹기는 했지만, 도무지 맛있다는 생각도 안들고... 너무 많이 시킨 탓인지 다들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타이밍에 접시에 있던 그 녀석이 마지막 몸부림으로 크게 요동쳤다. 다시 

"으아아악~~"

아버지가 뭘 그렇게 요란을 떠냐고 한소리 하셨지만, 그 꼴을 보고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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