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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야밤의 탄 냄새

푸른밤파란달 2021. 5. 23. 23:02

이번 주에 우리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하기로 했다. 당신 집에서 하자라고 장소를 정해서 문자가 와서 조금 당황했지만, 집안 꼴이 워낙 엉망이라 강제 청소를 하려면 식사 초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자 했다. 떡볶이나 시켜먹자고 부담 갖지 말라는데, 나는 떡볶이 안 좋아한다. -_-;; 그리고 음식 배달 시켜본 적도 아주 오래전에 치킨이나 좀 시켜 먹은 정도라서...

식사 모임 멤버는 나 포함 3명인데, 셋 다 말하는 것이 직업이어서 (물론 현재 나는 백수지만...-_-;;) 일반 식당 가면 자리 옮기고, 커피숍 찾아다니고 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집에서 편하게 모이는 편인데 혼자 사는 우리 집이 제일 만만하긴 하다. 내가 조리하면서 서빙하면, 손님들이 불편해해서 한 상 차려서 세팅해놓고 수다를 떨어야 되는데 그런 메뉴가 잘 없다. 샤브샤브와 월남쌈을 하고 나니 적당한 메뉴가 없어서 브런치 한 상차림을 할까 했다.

구글에서 주운 이미지

대충 머리속에 그린 모습은 이런 느낌. 여기에 자몽에이드나 라즈베리 아이스티(이번에 한박스 샀다-_-;)를 곁들이면 어떨까 했다. 풀드 포크가 정통방식으론 10시간 가까이 훈연으로 익힌 덩어리살을 잘게 찢은 것인데, 대충 저런 비주얼이면 압력솥에 좀 찌면 될 것 같았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마침 그렇게 해드신 분들이 많아서, 덩어리 살을 주문하고 오늘 미리 500g 한 덩이로 연습했다.

오래전에 사둔 스테이크 시즈닝 포장을 뜯어서 겉에 바르고 냉장고에 좀 두었다가 압력솥에 넣는데, 어떤 레시피는 양파와 사과를 깔기도 하고 어떤 레시피는 그냥 돼지고기만 하기도 하던데... 나는 그냥 시판 돼지갈비 양념이 조금 남았길래, 물과 섞어서 넣어주었다. 양파와 사과가 끌리긴 했는데, 음식물쓰레기 처리가 힘들것 같고, 그냥 돼지고기만 넣기엔 타 버릴것 같잖아.

아주 약불에 30분만 두어야지 했는데,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난다. -_- 망했다. 급하게 불을 끄고 강제로 수증기를 빼는데, 아아... 탄 냄새가 지독하다. 뚜껑을 열어보니 고기에서 그나마 조금 있던 지방은 다 빠져서 돼지갈비 양념이랑 바닥에 두껍게 눌어 붙고 고기도 철썩 바닥과 일체가 되어 있다.

그런데, 탄 냄새 뒤따라 오는 식욕을 자극하는-_-;; 냄새. 분명 오후 내내 캐슈넛이랑 아몬드를 줏어먹어서 입맛이 없었는데 말이다. 3장 남아있던 식빵과 억지로 떼어낸 고기 조금과 치즈, 맛살로 급하게 저녁을 먹었다. 맛이야 뭐 없을수 없는데 문제는...저 두껍게 타버린 압력솥을 어쩔까나. 어제 로또만 됐어도 솥을 버리고 새로 사는건데!

아...그리고 보니 그제 밤에, 옥션에 4인 스텐리스 압력솥이 7천원에 올라왔었다. 척 봐도 가격 오류같지만 빛의 속도로 결제를 했다. 4인용이 7만원은 너무 비싸거니와 4인분은 1인 가정에서도 너무 사이즈가 작아서 재고떨이 하는가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치만 아침에 일어나니 가격 오류라며 취소가 됐는데, 새로 책정된 가격은 8만원이어서 웃겼다. -_-;

여튼 솥이 식으면 고기를 뜯어-_- 내고 불렸다가 내일은 내내 탄 솥을 벗겨야 한다.

야밤에,온 집안에 탄 냄새와 고소 짭짤한 고기 냄새가 수시로 교차하면서 냄새가 지독하다. 급 의욕 상실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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