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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와 할머니 본문
올해 이른 봄 어드메쯤에, 늘 적립금때문에 5만원이상씩 주문을 하던 패턴을 바꾸어(왜냐하면 책이 자꾸 쌓여가니까!) 딱 읽을 책만 주문하겠다고 다짐하며, 두 권을 산 적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와,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당시 드라마로 방영중이었고, 오래전에 읽은 작가의 전작이 좋아서 주문했던 책이다. 그리고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카카오 페이지로 읽고 있었는데, 띄엄띄엄 오래 시간을 끌며 읽어서 끝까지 읽은지도 기억이 안나고 해서 다시 봐야지 했던 책이다.
뭐, 늘 그렇듯이...책을 주문할때만 신나지. 그나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꾸역꾸역 초가을 어느날 밤에 다 읽었다. 그때도 중반까지는 진도가 안나가다가, 절반은 하룻밤사이에 후루룩 읽고, 그 여운에 컴퓨터를 켜고 몇 글자 쓸까 어쩔까 망설였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그땐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있을때였으니까.)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다른 책더미와 옷사이에 깔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방으로 잠자리를 옮기고 우연히 발견해서 조금씩 읽다가, 역시 절반쯤 남았을때, 밤을 새서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본가로 김치를 가지러 가야 해서 지금 잠들면 안되기때문에 블로그 창을 열었다. -_-;;
책에 대한 정보는 오래전에 카카오 페이지 소개란에서 읽은 어디 공모작 수상작이었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랬나...그게 전부였고, 글의 중반까지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그런지 더 진도가 안 나갔다. 다 아는 이야기는 지루하기 마련이다.
첩첩 산중 시골 마을, 스마트폰도 안 터지는 충남의 두왕리를 배경으로 83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수생인 강무순양(?!)은 홀로 남은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일가 친척으로부터 강제로 할머니집에 버려짐?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할머니는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씩씩하시다.
"해가 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자빠졌구먼."
소설의 첫 문장이다. 늦잠자는 손녀에게 내뱉으시는 일갈이, 본가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고 괜히 등짝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든다.
이런 양심에 찔리는 문장으로 시작한 소설은, 시골 마을에서 어느날 갑자기 실종된 네 소녀들의 이야기를 파헤쳐가면서 진행이 된다. 문체가 좋게 말하면 발랄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가벼워서 초반에는 굳이 이 책을 꼭 새책으로 샀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볼 것을... (요즘 도서관의 책들은 상태가 매우 훌륭하더라.)
제목과는 달리 잔인한 장면은 없고, 그냥 발랄하고 유쾌하기까지한 충청도 사투리와 시골마을 생활에 대한 묘사, 그 와중에 소녀들 실종사건에 대해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밝혀지는 의외의 미스테리들... 작가가 굉장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뿌린 떡밥은 확실하게 회수를 한다. 그래서 그게 너무 꽉 들어맞는 상자에 들어있는듯한 갑갑함을 느낀다. 적당히 시선분산용으로 뿌려놔도 되는데 아마 드라마 쓰던 습관에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별것 아닌것 같지만 모든것을 다 설명하려 하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그게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
일종의 미스테리 소설이라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뭔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 되버리긴 했다.
손녀와 투닥투닥 하는 홍간난 여사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요즘 부쩍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덧붙인다. 아주 오래전이다. 그러니까 하이텔 대화방에 갓 재미가 들려 밤낮으로 우리집 전화가 통화중이던 시절. 추석날 오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출석부에 열심히 도장을 찍던 하이텔 고정 대화방의 방장이 나를 보러 김해에 왔다는 전화였다. -_- 지금이라면 이런 예고없는 방문에 질색팔색을 하며 만나러 나가지도 않았을테지만, 그때의 나는 모든것이 서툴고, 어색한 스물 두살 꽃띠(!) 였다.
하이텔 아이디가 j로 시작하니, j씨라고 하자. 오후 늦게 연락을 받았고, 만난 시간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j씨의 본가인 포항으로 가는 버스는 진즉에 끊어지고 없었다. 역시 지금이라면 택도 없는 일이지만, 어쩔수 없이 집으로 j씨를 데리고 왔다. 본가는 이층을 나 혼자 쓰고 있었고, 실외로도 계단이 있었기에 몰래 들어가서 아침 첫차를 태워 보낼 계획이었다. -_-;;; ( 세상물정 모르던 스물 두살이었다.)
나는 자고, j씨는 밤새 컴퓨터로 하이텔을 하다가 새벽 푸른 빛이 사라지기전에 조용히 이층 계단을 내려 오는데, 마침 그때 일어나셔서 이불을 정리 하고 계시던 할머니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이 딱 마주쳤다. 머리에 물음표를 백만개쯤 달고 있으신듯한 할머니의 표정에 아...뭐라고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계단을 내려와서 무사히 j씨는 첫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뭐라고 물어보시면 그냥 사실대로 말씀 드릴 생각이었는데 그 후에도 할머니는 그 일에 대해 한번도 물어보거나, 언급을 하신 적이 없다. 나 또한 할머니가 물어보지 않는데
"할머니 사실은 그때..."
라고 말할 만큼 뭐 그렇게 넉살이 좋거나 한편은 아니어서, 그 일은 그렇게 잊혀졌다. 10여년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후로 가끔, 할머니는 그때의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기는 하다. 일층에 부모님과 할머니가 계신데, 이층 방에 남자(!)를 데리고 오는 발랑 까진 계집애로 봤을까, 아님 내가 그렇게 하는것에는 다 이유가 있으실거라고 믿어주셨을까... 지난 여름부터 자주 할머니의 그 물음표 가득한 표정이 떠오른다.
j씨는 고향 포항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리고 뭐 당연하지만, 그 날 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어쩜 그렇게 무방비하게 애처럼 잘 자냐는 소리를 들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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