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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8일 전라도 일주(4) 미륵사, 왕궁리 오층석탑, 채석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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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8일 전라도 일주(4) 미륵사, 왕궁리 오층석탑, 채석강

푸른밤파란달 2020. 10. 16. 20:07

전주에서 익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금마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유명한 유적들은 익산시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마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도상으로 익산시보다 금마면이 더 가까워서 시간도 절약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계산착오였다.

 

익산으로 가는 버스는 거의 10분에 한 대씩 출발을 하는데, 금마로 바로 가는 버스는 한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며 시간 죽이는걸 싫어하는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버스기다리면서 책보고, 음악듣고, 아침으로 비스켓 먹고 그래도 버스는 안 온다. 한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버스가 왔다.

 

목적지를 보니 금마를 지나 함열로 간다. 오호 미륵사지가 금마-함열사이에 있기에 기사 아저씨께 미륵사지에 내려주시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일언지하에 거절하신다. 잘못 내려줬다가는 시내버스 기사들한테 욕먹는다고. 잠이 들었나부다. 기사아저씨가 깨운다. 금마란다. 

 

짐을 챙겨 후다닥 내리고 보니 버스터미널은 화장실 냄새와 파리들의 천국이다. 미륵사지행 시내버스를 탔다. 손님이 거의 없다. 기사아저씨께, 나의 목적지도 알릴겸 "미륵사지 가는 버스 맞죠?"하고 확인을 했다. 아저씨만 믿고 창밖 경치구경하는데, 드뎌 창밖으로 거대한 탑이 나타났다. 하지만 아저씨 그냥 지나칠려구 하신다. 겨우 또 허겁지겁 내렸다. 전북은 참 무뚝뚝한 동네 인가부다. 서 석탑이 공사중인 관계로 입장료는 없다.

 

<해체 복원중인 미륵사지 서석탑>

절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황룡사지 갈 때마다 황룡사의 규모가 상상이 안되서 괴로웠는데, 여기는 규모가 10만평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연못이 보이고, 왼쪽 위쪽에는 유물 전시관과 공사중이 서석탑이 보인다. 저렇게 공사를 하니 굉장히 깔금해보인다. 사고 위험도 적을 것 같고. 일단은 유물전시관에 들렀다. 날씨는 구름이 좀 많은 날이었는데 기온이 상당히 높아서 벌써 땀으로 끈적거렸다.

 

 

씽비게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안내려오고 머하냐고 농담을 하신다. 이제 시작이구만. 대충 구석자리에 배낭을 세워놓고 유물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대략적인 백제의 역사와 절집양식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좋았다. 역시 메모를 안해서 지금은 별로 머리에 남은 것이 없다.  미륵사 복원해놓은 모형도 좋았다. 유물관 돌아보기를 마치고, 배낭에서 방석만 하나 꺼내고 땡볕으로 나갔다. 먼저 서석탑이 어찌되어있는가,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람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분리되어있는  탑의 부재들>

 

 

<해체공사중>

 

 

<탑의 높이에 따라 공사현장도 층을 나눠놨다.>

 

<복원공사전의 미륵사지서탑의 모습>

 

일제가 붕괴 방지를 목적으로 무너진 곳을 무식하게 시멘트로 발라놓은 모습. 도대체 그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 저렇게 만들어 놓을 수 가 있단말인가...더 이상 흉칙스러울 수 없다. 다행히 새로 해체공사를 하고 있다니, 그래서 현장에 가도 책에서 처럼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별로 섭섭하지가 않다. 다음에 왔을 때는 훨씬 예전에 가까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공사장 방충망을 통해 본 동탑의 모습>

 

미륵사는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의 청으로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10만평의 규모답게 탑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똑같은 동서 두 석탑 사이에 그것보다 더 큰 목탑이 있었다고 하니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필적할 만하다면 너무 과장이 심한건가. 피라미드는 내눈으로 안 봤으니 알 수가 없지. ; 

 

<서탑 부근의 버려진 석재들. 석탑의 지붕돌인 듯>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복원된 동탑>

 

멀리, 새로 만들어진 동탑과 함께 당간지주가 보인다. 서탑을 원형으로 새로 만들어진 동탑은, 아무리 서탑과 똑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서탑이 공사중이라, 중간에 있는 당간지주와 함께 찍어보았다. 사람냄새가 완전히 빠져 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된 당간지주와 아직도 인공적인 숨결을 지닌 동탑, 너무 대조적이다. 이런 것이 세월의 힘인가...

 

<미륵사터 당간지주>

 

보통 당간지주는 절집앞에 있기 마련인데, 미륵사터 당간지주는 절안에 있다. 연못을 지나, 석탑 바로 근처에 그것도 두쌍이 나란히 있다. 내가 본 당간지주 중에 가장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늬도 정교하고, 생김새도 아주 날씬하니 예쁘다.

 

 

<미륵사지 동탑>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앞에서 20세기의 오만함을 느낀다. 그 옛날 지극 정성으로 돌을 하나하나 지고, 굴려서 옮긴 것을 맞추어 쌓던 정성은 어디가고, 뽀얗게 기계로 잘 다듬어진 돌들이 어쩌면 저렇게 징그러울 정도로 모서리가 딱딱 맞는지...탑상륜부의 금칠은 또 뭐냐. 아무리 똑같이 복원을 한다고 해도 정성까지 똑같이 넣을 수는 없는것일까...

 

미륵사지탑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탑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래된 탑이다. (물론 서탑을 말한다.) 목탑양식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최초의 탑으로도 보여지는데, 지붕돌이 얇은 것이 백제탑의 전형이다. 그리고 탑이 있던 자리는 원래 연못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흙과 자갈로 메우고 다져서 거대한 석탑을 세우고, 1300년 동안 그 거대한 석탑의 무게를 지탱하게 한 백제의 기술,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 만든 탑의 지붕돌마다 달린 풍경에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멈추어 버린탓일까. 햇살이 뜨겁다. 절 뒤쪽으로 흔적만 남은 금당 자리를 돌아본다. 곳곳에 줄이 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가기는 좀 꺼려지고, 밖에서 보자니 자세히 안보이고...

 

 

 

줄이 쳐진 금당터를 보니, 어느해 겨울 황룡사지에 갔을 때 거길 마구 휘저으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꼭 그때만 아니라도, 황룡사지에 가면 늘 목탑자리에 올라가서 심초석을 쓰다듬고 오지 않았던가. 줄을 넘어가기엔 너무 소심해져 버렸나...몇채인지도 모를 절집터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석등에 쓰였음직한 돌이 보인다.

 

연꽃모양이 부드럽다. 이곳 땅이 원래 습지였는지, 며칠전에 비가 왔는지 뜨거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땅이 모두 축축하고 어떤곳은 질척거리기까지 했다.

 

 

<미륵사터의 배수시설>

 

여기저기 건물의 귀퉁이마다 배수시설이 있는곳으로 보아 이곳은 전체적으로 습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잠시 해봤다. 무왕이 지명법사의 신통력을 빌어 하룻밤 만에 산을 헐어 못을 메우고 그 위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과연, 정말 일지도 모르겠다. 축축히 젖은 땅에 발자국을 내어본다.

 

<옛우물의 흔적, 안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있었다.>
<길에서 주운 기와조각. 유물전시관에 본거랑 같은 것이다. 동전만한 크기>

 

 

한낮의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배낭을 메고 미륵사지를 떠났다. 길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먼지를 폴폴 일으키며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다가, 버스에 올랐다. 어랏, 나를 내려주고 갔던 그 버스네. 기사아저씨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다시 금마 터미널로 돌아가서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러 가야 된다. 책에는 1.5Km라 나와있는데, 3Km쯤 되는 것 같다.여튼 1.5Km라 해도 너무 더워서 배낭메고 걷기는 힘들 것 같아 택시를 탔다. 아직 발굴 중인 곳이라 탑 밖에 볼것이 없는데, 택시를 기다리라고 했어야 했다. 나를 내려주고 떠나는 택시를 황망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왕궁리,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아직도 발굴중인지, 탑 입구에는 발굴팀의 숙소가 있고, 그 앞으로 인부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전부 한번씩 쳐다본다.

 

 

<탑앞의  발굴하다 만 곳>

 

황당한 마음을 씻어주기에 충분한 왕궁리 오층석탑. 지붕돌이 수평으로 넓고 얇은 것이 딱 백제탑임을 알 수 있다.(백제탑은 몇 기 안 봤지만, 그런 특징들은 공통인 듯...)  신라탑이 익숙해서 그런가, 나는 통일신라시대의 탑들을 더 좋아하지만, 백제탑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뭔가 평안한 느낌을 준다.수평선과 수직선의 적절한 조화라고나 할까. 곱게 늙은 온화한 표정의 귀부인을 보는 듯한 느낌. 

 

 

탑 사진 좀 찍고 주변을 둘러보니 키 큰 잡풀사이로 주춧돌들이 보인다.

 

 

발굴작업을 하다, 잠깐 덮어둔 듯 한데, 빨리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면 좋을텐데 말이다. 여기도 탑주위만 볼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줄을 쳐놨다. 아직 발굴중이니, 줄을 넘어가지 말라는 협박성 글들. 석탑과 주변을 둘러보고 나니, 이제 별로 할 게 없다. 근데 택시비 아까워서 못 떠나겠다. 카메라를 들고 계속 석탑주위를 돌아다닌다.

 

이제, 더 볼 것도 없다. 그야말로 샅샅이 다 살펴보고, 다시 터미널로 그 택시 부를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걸어가거나, 히치를 하는 방법인데... 내 성격에 역시 히치는 무리다. 그냥 걷자. 배낭끝을 바짝 조인다. 그러나 햇볕은 너무 뜨겁다. 얼굴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2차선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는다.

 

<길가에서 본 왕궁리 오층석탑>

 

조금 걷다보니 탑 쪽으로 또 발굴 현장이 보인다. 여기는 지금 발굴하고 있는 듯, 장비도 있고 사람도 두어명 보인다.

 

 

 

또 하나의 숨겨진 역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굴 현장을 두어번쯤 봤는데, 그때 마다 말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낀다. 역사적 '진실'이란, 바로 눈에 보이는 것 그대로가 아니겠는가. 잠시 풀섶너머로 구경을 하다가 다시 나의 길을 간다. 갈길이 멀다. 표지판에 오른쪽으로 석불 입상이 있다고 나온다. 이제 갈색 표지판만 보면 무조건 가고 싶어진다.

 

책을 찾아보니 동고도리 석불이다.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두 석불이 마주보고 서 있단다. 기대에 부푼다. 걸음을 좀 빨리 한다. 자고 일어나면 다리가 아주 무거워서 엉금엉금 기어다니게 되는데, 한낮쯤 되면 그게 좀 풀려서 또 싸돌아다니게 된다.

 

 

마주보고 있는 이 두 석불은 각각 남자와 여자인데 평소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해일(亥日)에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서 회포를 풀다가 첫닭이 울면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다. 두 석불 사이는 꽤 넓은 논들이 있고, 그 사이에 옥룡천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의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옥룡천>

 

석불이라기 보다는 석장승에 가까운 이 동고도리 석불은 보물 제 46호다. 옥룡천에는 노란색 칠을 한 다리가 놓여있는데, 칠도 벗겨지고, 다리 폭도 너무 좁아서 굉장히 거슬린다. 주변의 논에는 온통 비닐하우스를 하고 있는데, 그곳을 지키는 개가 시끄럽게 짖어댄다. 

 

땡볕에 한시간 넘게 걸어서 금마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로 가는데, 전주행 버스가 지나간다. 이상하다.시간이 좀 남았는데...근처의 슈퍼에 가서 물과 오렌지와 탱크보이 한 개를 샀다. 더울 때는 탱크보이가 최고다. 터미널로 돌아가니 1시 5분. 1시 15분에 전주 가는 차가 있다. 전주에서 바로 부안가는 차를 탈 예정이다. 금마는 작은 시골면이라서 교통이 불편하고 시외버스도 거의 없다.

 

1시 15분이 되도 버스가 안와서 매표소에 물어보니, 손님이 없어서 아까 갔다는거다. 내가 걸어오면서 봤던

버스가 그 버스였던 것이다. 대체 손님 없다고 시간보다 10분 일찍 출발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황당하기 이를데없다. 다음 버스는 3시에 있단다.

 

결국 시내버스를 타고 익산으로 가서 익산에서 부안가는 버스를 탔다. 변산반도로 바로 가는 직통버스도 있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부안으로 가기로 했다. 여러번 갈아타더라도 멍청하게 기다리는 시간은 줄이기로 했다. 버스는 김제를 지나서 부안으로 간다. 

 

영국에서 가장 적응이 안되던 것이 지평선에 걸리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둘러보아도 그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저 멀리 보이는 집들이 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넓음... 그걸 김제에서 다시 느꼈다. 정말 넓은 평야다. 버스 창으로 보는 김만평야("김제 만경 너른들"이라는 뜻이란다.)에는 산도  없다. 유럽처럼 그저 낮은 구릉같은 것이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간다.

 

벽골제 표지판도 지나가고, 동진강도 지나간다. (벼종류중에 "동진벼"라고 있는데...이제 생각이 난다.)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풍경을 지나가는데, 사진을 찍을려고 카메라를 꺼내다보니 벌써 지나가 버린다. (역시 준비된 자만이 멋진 컷을 찍을 수 있다.)

 

 

부안에 도착해서 다시 격포로 가는 버스를 탄다. 이제는 간간히 창가로 바다가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갯벌이 신기하다. 물이 빠져서 넓게 드러난 시커먼 갯벌. 비록 달리는 버스 안이지만 셔트를 마구 눌러본다. (건질 만한 사진은 별로 없다.) 그러다 뭔가 휙 지나가는데, 처음에는 귀신인줄 알았다. 버스가 한참 높은곳을 달리는데, 눈높이에서 뭔가 지나가니...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상징물들이었다. 장승도 엄청 많이 꽂혀있고, 고깃배도 거꾸로 매달아놓고,

무슨 구호들이 잔뜩 적힌 현수막도 걸려있고...아, 말로만 듣던 새만금이 여기구나...

 

변산해수욕장을 지나오는데, 흐린 하늘과 흐린 바다, 소나무, 바다를 향한 벤취들이 정말 예쁘다. 한폭의 그림 같았지만...역시 준비되지 못한 카메라탓에 사진은 남길 수 없었다.

 

격포에서 내리고 보니, 어느쪽이 바다쪽인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큰길로 나가서 다시 이정표 보고 방향을 잡았다. 좀 걷다보니 바로 바닷가 어촌계 횟집이다. 그냥 평범한 어촌마을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지만, 서둘러 민박을 구했다. 여행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피로가 많이 쌓인탓이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태풍이 온다더니 날씨가 꽤 흐리다. 굳이 채석강을 넣은 것은,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구름 때문에 힘들 듯 하다. 짐을 풀어놓고 대충 땀을 씻고,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민박집 바로 앞이 국립공원 입구라서 구경하기는 좋았다. 오늘은 걍 대충 둘러보고 낼 아침 일찍 다시 둘러봐야지. 방파제 따라 멀리 보이는 등대까지 걸어보았다.

 

 

멋진 일몰은 포기하고, 방파제에 들어선 포장마차 횟집의 갑오징어와 개불, 해삼등을 구경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여기 해산물들은 이상하게 다들 덩치가 크다. 방파제에서 꼬맹이 소라를 샀다. 밥 공기 한가득이 이천원이다. (얼마전 해운대에선 종이컵 하나가 3000원이었는데, 그나마 속이 빈게 더 많았다.-.-;)

 

등대까지 천천히 왔다갔다하면서 낚시하는 사람 구경도 하고, 다시 돌아나와서 바닷가에 정박해있는 고깃배들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소라를 까먹으며 창밖으로 해지길 기다리는데(커다란 창이 바다를 향해 나있는 방이었다.) 주륵주륵...기어이 비가 왔다. 태풍이 오긴 오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