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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9일 전라도 일주(5) 내소사, 선운사, 고창읍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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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9일 전라도 일주(5) 내소사, 선운사, 고창읍성

푸른밤파란달 2020. 10. 16. 21:34

6월 19일. 눈을 떠보니 비가 주룩주룩 온다. 집에 전화해서 태풍피해는 어떤지 물어보고 아침에 일찍 국립공원 입구로 들어갔다. 아침 6시경. 그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던 우산을 드디어 펴 보았다. 비가 와서 길은 질척거리고 오늘은 그냥 땡땡이칠까 뭐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일 괴롭다. 다리 전체가 천근만근이나 되는 듯 무겁고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댄다.

 

숲이 우거지고 약간 오르막인 길을 미끄러지지 않게 올라가느라 아침부터 땀뺐다. 벌써 옷은 젖어오기 시작하고, 사진은 계속 흔들리기만 했다. 그냥 내려가자. 그냥 한 바퀴 휘 돌아보고 다시 민박집으로 갔다. 씻고 준비하고 민박집 출발. 내소사로 바로 가는 차가 새벽 6시부터 두시간 간격으로 있었던 것 같아 버스타는곳에 가니 좀전에 출발했단다. 두시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시간들을 정말 못 견뎌한다.) 비가 오니 어디 싸돌아다니기도 그렇고... 걍 슈퍼앞 의자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떨어지는 빗물을 구경한다. 지겹다.

 

심심할 때 읽을려고 가져간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읽었다. 해남, 강진도 일정에 있어서 특히 앞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다. 드디어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탔다. 손님은 역시 나밖에 없다.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다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구경한다. 곰소를 지나간다. 일정에 넣었다가, 영광에도 천일제염 염전이 있다해서 뺐던곳. 비가 오니 더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70년대 영화([저 하늘에도 슬픔이] 류의...)에서 보던  나무 소금창고, 바닷물을 가둔 네모난 소금밭에서 혼자 돌아가는 작은 풍차들. 군데군데 기계식 풍차도 보이고...텅빈 염전이 어쩐지 을씨년스럽다.

 

내소사 입구에 도착. 매표소에 배낭을 맡기고 천천히 들어갔다. 비는 이제 이슬비 마냥 오는 듯 마는 듯 했다. 우산을 받쳐야될지 고민 될 만큼...

<입구의 할아버지 당산나무, 절안의 할머니 당산나무와 짝>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자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그 푸르고 맑은 느낌이 이슬비와 어울려 나도 한없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텅빈 길위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축축하기 보다는 촉촉하단 느낌이 드는걸 보면 역시 인간의 마음은 간사한 것인가... 한참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길이 조금 꺽이면서 단풍나무길이 시작된다.

 

아주 아껴서 천천히 걷는다. 길이 꺽이는 부분 옆으로 네모난 모양의 연못이 있고, 빗속에 수련이 몇 송이 피었다.

 

<이제 막 봉우리가 벌어지려는 수련>

 

진흙탕을 피해 연못을 보고, 옆에 있는 부도밭으로 갔다. 길에서 제법 위쪽에 있다. 단정하게 둘러진 담장 안으로 크고 작은 부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맞은편의 커다란 비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다른 절이었더라면 새로 만들어진 덩치만 큰 이런 비석 따위를 보러 지그재그로 걷는 일은 안했을테지만, 내소사에선 눈에 보이는 것 모두를 담아오고 싶었다. 그 맑고 푸르른 공기까지도...귀부도 비신도 대단히 큰 비석이었다. 두 기가 나란히 있는데, 거북이들 모양이 많이 다르다.

 

 

절집뒤에 병풍처럼 둘러진 산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온통 바위산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난다. 절안에 들어서면 오래된 수령의 나무들 사이로 절집들이 수줍은 듯 조금씩만 보인다. 이름값을 하는지, 경내로 들어서니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단체 관람객도 있고...(전라도의 절집에서 제일 사람을 많이 본 곳.-.-;)

 

 

다른 절처럼 높은 축대 대신, 두 서너단씩의 계단으로 조금씩 높아지는 절집이 참 아늑하고 편안하다. 고려시대 동종이 걸려있다는 범종각부터 들렀다. 봉래루밑은 단체관람객들이 잔뜩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답사여행 길잡이>에서 내소사를 찾아서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다 읽어갈 무렵, 구경을 다했는지 단체관람객 아저씨들이 돌아나오기 시작했다. 범종각에 앉아있으니 몇몇 아저씨들이 궁금해서 이쪽으로 와서 종을 보고 간다.

 

<봉래루>

 

 

자연석 그대로의 주춧돌에, 주춧돌 높이에 맞춰 기둥 길이가 다 다르다. 채색이 안된 누각의 소박한 모습 역시 자연 그대로다. 봉래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삼층석탑과 대웅보전의 모습이 보인다.

 

처마의 양끝이 날개를 활짝 펼친 학같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이다. 오랜 세월 지나면서 채색이 벗겨진 원래의 나무 모습 그대로가 드러나있다.

 

 

<대웅보전앞의 삼층석탑>

 

작고 앙증맞은 석탑하나가 대웅보전앞을 지키고 있는데, 일층 몸돌에 비해 2,3층 몸돌이 너무 작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지붕돌도 흉내만 낸 듯, 혹은 퇴화해 버린 듯 아주 폭이 좁다. 특히 일층은 지붕이 아주 두툼하다.

 

드디어, 내소사 대웅보전앞이다. 그동안 책에서 엽서에서 지겹게 봐 오던 내소사 꽃창살. 실물을 보게 되었다. 마침 점심 공양시간인지, 한분 보이던 스님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텅빈 절집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안으로 열린 문짝의 꽃들이 더 이쁜데, 안에선 빛이 너무 적어 제대로 된 사진이 거의 없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문을 모두 닫아 버릴 까 하다가, 아직은 소심하여 그러질 못하고 제대로 찍일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찍는수밖에 없다. 채색이 씻기우고 꽃잎이 떨어져가도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높아만 가는 것 같다. 세월의 힘이란...

 

밖에서 보면 그렇게 화려한 꽃창살도 안에서 보면 이렇게 단정한 격자모양이다. '내소사'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느낌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즐거움. 보통의 절집 전각 천장에는 등이 잔뜩 달려있어서 천장의 단청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이곳은 등이 하나도 없어 천장의 그림을 맘껏 볼 수가 있다.

 

 

대들보에 용 두 마리가 조각되어있는데, 한 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고, 한 마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어두운데다가 줌으로 땡기니 더 많이 흔들린다. 아마도 스무번은 넘게 찍었을테다. 밖에 스님이 왔다갔다 하셔서 마음이 급하니 더 안 찍힌다. 여의주 물고 있는 용은 그냥 흔들린채로 찍고 나왔다. (너무 흔들려서 사진은 뺐다. 

 

밖에 나오니 아까보다 비가 더 많이 온다. 오른쪽의 요사채 담장도 아주 단정하니 이쁘다.

 

낮으막히 돌담으로 쌓았지만 대웅보전의 주춧돌에 걸터앉으면 마당이 훤히 다 보인다. 무엇보다 통도사처럼 어설픈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든다. 기둥사이도 반듯하니 단정한 느낌이고...(사실은 내소사에서 보이는 것 모두가 좋아보였다. ^^) 

 

혹시나 사진찍는 사람있을까봐 대웅전 뒤쪽의 좀 넓직한 주춧돌에 자리 잡고 앉아서 나도 점심으로 비스켓을 먹었다. 많이 걷고 물을 많이 먹어대니 좀처럼 입맛이 안 살아난다. 두어개 먹다가 도로 집어넣고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으니,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며, 계곡의 물소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꽃창살 한번씩 더 보고 절집을 나왔다.

 

 

매표소에서 배낭을 받고, 나오는데 일주문 사진을 안 찍은 것 같아 사진찍을라고 보니 일주문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신다. 할머니 비키시면 사진을 찍을려고 할머니당산나무도 찍고 그래도 안 일어서신다.

 

 

나: 할머니, 왜 절안에 안가세요??

할머니: 아이구 그러게 말이여. 다리가 아파서 나는 못가...속상해 죽겠어.

나: 별로 안 멀어요. 조금만 가시면 되는데...

할머니: 조금이구 뭐구 통 걸음을 못 걸어. 여까지 왔는디 속상해 죽겠어.

 

아마도 관절염이신거 같은데, 절집 구경못해서 속상하시다는 분에게 사진찍는다고 자리를 비켜달랄 수도 없고, 그냥 할머니 앉아 계신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제일 앞의 일주문사진.) 버스에서 내렸던 주차장으로 나오고 보니 비를 피할곳이 마땅치 않다. 우산을 계속 들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배낭도 젖어오고. 할 수 없이 주차장 옆의 화장실 입구에 서있었는데, 암모니아 냄새로 괴롭긴 마찬가지.

 

마침 버스가 하나 들어오길래 뛰어가보니 정읍가는 차다. 정읍도 지도에 꽤 크게 나와있어서 선운사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지 않을까 해서 버스에 올랐다. 내 짐을 보더니 기사 아저씨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신다. 선운사 간다니까 정읍까지 가지 말고 줄포에서 내려서 흥덕으로 가면 선운사로 가는 버스가 있단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정읍이나 고창으로 갔다가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 같다. 기사 아저씨가 줄포에 내려주시면서 오른쪽으로 가면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혼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공용터미널근처로 와서 마침 밖에서 이야기 하시던 아줌마에게 여쭤보니 옆에 있던 아줌마가 자기를 따라오란다. 열심히 따라 갔더니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르쳐주시고 돌아서 나가신다. 흠...그 아줌마도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시나 했더니, 나 때문에 일부러 터미널까지 들르셨다가 가신 것이었다.

 

이런 분 만나게 되면 여행에서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 든다. 줄포에서 흥덕으로, 흥덕에서 다시 선운사로 버스는 바로바로 연결이 되었다.

 

 

선운사는 주차장에서부터 제법 걸어야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가는 길은 온통 벚꽃나무라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룰 것 같았다. 지금은 까맣게 익은 버찌가 길에 가득 떨어져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산딸기밭이었는데, 산딸기를 심어서 재배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빨갛게 익어가던 지리산 산딸기가 생각나서 한 개 따 먹어보고 싶었지만,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다. 비는 이제 거의 그친 듯 해서 우산은 접어넣고 그냥 간다. 배낭 맡길곳이 마땅치 않아 지고 다닐 수 밖에...

 

매표소 근처부터는 왼쪽으로 개울을 끼고 걷는다. 비 때문에 물이 제법 불어서 물소리가 시원하다. 역시 높이 올라가는 절집이 아니라 좀 걸어도 별로 힘들지가 않다.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숲길을 조금만 걸으면 오른편으로 부도밭이 나온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있다곤 하나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나물 뜯는 할머니 두분이었다. 그 할머니들이 뜯는 나물을 아무리 봐도 질경이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할머니께 여쭈어보니, "요즘 사람들은 뭘 몰라~ 이런거 요즘사람은 뜯어먹나..." 그러시군 그냥 웃으신다. 

 

 

김정희의 글씨는 찾아보지 않고 부도만 실컷 구경하고 돌아나온다.사실은 글씨나 그림을 알아보는 재주는 없어서 내눈에는 어떤게 좋은건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나온 것이다. (바위의에 올려진 삼층석탑 앞에 있는 비석이 김정희가 글씨를 쓴 백파부도비다.)

 

절집은 공사중이다. 담벼락을 새로 쌓는공사란다. 담벼락 쌓는데 포크레인이 땅을 다 헤집어놓고 있다. 공사현장이 안나오게 사진 찍는 기술이 필요하다.

 

 

천왕문을 지난다. 다른 절에서 보던 무섭게 인상을 쓴 사천왕상과는 달리, 그 모습이 웃고 있어서 저래가지고 악귀들을 쫓아내겠나 싶다.

 

<인상이 너무 선해보인다.>

 

 

<오늘의 포토제닉. 사천왕상에게 잡혀있는 악귀와 요부>

 

사진이 많이 흔들리긴 했지만 사천왕상에 잡혀있는 악귀와 요부 조각이 재미있다. 심술이 더덕더덕하며 눈은 치켜떠서, 너희들은 깨끗하냐?라고 물어보는 것 같다. 천왕문 바로 위에는 종루다.

 

아쉽게도 계단을 올라갈 수는 없었다. 이런 구성은 처음보는 것이라 신기하다.천왕문을 들어서면 만세루가 눈앞을 가로막는데, 누각문이 아니라서 더 답답하게 보인다. 다른 건물을 짓고 남은 목재로 지었다는데, 규모가 크다.

 

 

<만세루와 천왕문>

만세루를 돌아서 나와보면 마루로 된 강당?같은 구조임을 알 게 된다. 벽에는 선운사와 관련된 그림과 글씨들이 걸려있는데, 화엄사와는 달리 신발을 신고 올라가게 되어있다. 중년의 부부가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늦은 점심을 거하게 차리고 있었다. 나도 올라가서 벽에 걸린 것들을 구경하고 만세루와 마주보고 있는 대웅보전과 삼층석탑을 찍고 있는데, 엄청난 장비를 갖추고 사진찍으러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젊은 사람은 만세루위에 사다리까지 펼쳐놓고 나무와 나무사이를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가 선운사 구석구석 다 헤집고 나올동안에도 만세루의 나무짜임만 찍고 있었다.)

 

 

 

<만세루에서 보는 풍경들>

 

대웅보전에서 느껴지는 건 끝없는 단정함이다. 어떤 기교도 용납하지 않을 엄격한 단정함 말이다. 지붕선, 활주(명칭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둥 모두 직선으로 이루어져있다. 비온후라 공기가 더없이 청명한 느낌이라 모든 것이 맑게 보인다.

 

 

<선운사의 두건쓴 지장보살>

 

 

 

절집 뒤쪽의 동백나무숲도 보고 여기저기 사진찍고 있는데, 뭐라뭐라 고함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놀래서 나와보니 누가 아까 만세루위에서 사진찍는 사람더러 욕을 하고 있다. 문화재 훼손이라면서 이창동한테 전화한다느니 어쩌느니 소리소리를 지른다. (나도 올라갔었는데...-.-;;;) 근데 거긴 올라가서 보라구 되어있는 곳이다.  그 사진 찍는 사람의 일행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와서 좋은 말로 이야기 해도 그 아저씨 끝까지 소리소리를 지르는데 말투가 술마신 말투다. 술마시고 절에는 왜 오누...

 

 

마당에 내려서 돌확 사진을 찍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얀 개 한 마리가 나를 따라 다닌다. 아까 내소사에서 먹다 남은 비스켓 때문인지 커다란 개가 따라 다니니  험한꼴 당한까 겁도 좀 나고 술취한 아저씨는 여전히 소리를 질러댄다. "문화재를 밟고 올라가서 훼손하질 않나, 절에 개를 끌고 오질 않나...궁시렁구시렁" 내가 끌고 온거 아닌데...

<밥도 못 얻어먹었는지, 배가 등에 들러붙었다.>

 

어떤 아저씨가 다시 좋은말로 타이른다. (하도 고래고래 소릴 질러서 절집이 시끄러울 정도니...) 그 술취한 아저씨 말씀이 가관이다. "당신이 여기서 불륜을 하든 뭘 하든 상관안할테니 당신도 상관마라" 그 아저씨 불륜이란 말 듣더니 말씀이 험해지신다. 이게 무슨 꼴볼견인지... 얼른 사진 찍고 나와 버렸다.

 

 

도솔암과 낙조대는 너무 높고, 이미 기분도 상해 버리고해서 포기하고 갈려다가 다리 난간에서 개울을 찍고 있으니, 아까 그 술취한 아저씨와 개가 나타났다. 개가 내 옆에서 킁킁거리니까 그 술취한 아저씨 개를 부른다. (그럼 저 개는 아저씨 개??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사진을 찍고, 매표소 근처의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서 주변의 신록을 감상한다. 야영지로 만들어 놓은 듯 넓은 잔디밭이 영국의 공원들과 많이 닮았다.

 

 

 

사진이 굉장히 어두운데, 나무 아래에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 까치한 마리가 무슨 과일인가를 먹고 있는데, 도무지 찍을 수가 없었다. 발줌을 하기엔 텅빈 잔디밭을 내가 훼손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산이며, 표지판들을 구경하다보니 고창 고인돌공원 표지판이 나온다. 고인돌을 너무 좋아하시던 올리브님과 아사녀님이 떠오른다. 고창시내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읍성 성벽이 나타난다. 급하게 벨을 누르고 내렸다. 딴 생각했음 터미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뻔 했다. 읍성 앞에는 판소리 박물관과 신재효 고택이 있는데, 이름만 신재효 고택이고 복원해놓은 모습이 조금 조잡해보였다.

 

시간이 오후 5시 40분쯤 되어서 판소리 박물관에는 안 들어갔다. 박물관앞 분수와 정원만 둘러보고 신재효 집터도 그냥 한 바퀴 돌아서 나왔다. 박물관이야 6시 되면 문 잠그고 가겠지만, 읍성은 매표소 직원만 퇴근할테니 한 10분 기다렸다가 걍 들어갈까 하다가 표를 끊었다. 

 

 

<고창읍성의 치>

 

언젠가 전라도 지역답사에서 본 기억이 난다.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성벽이 아주 견고해보인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마도 성벽을 다지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가끔 신경통이 도지는 나로썬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한 바퀴 돌기엔 많이 지쳐있었다. 성안의 나무 그늘에는 인근 동네 사람들인 듯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커다란 배낭을 흘끔흘끔 훔쳐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북루였나 성문위의 누각에 배낭을 기대어 놓고 돌아다녔는데 마침 할머니 할아버지 일행과 계속 가는코스가 같아서 사진을 거의 찍질 못했다.

 

 

<대원군의 척화비>

대충 돌아보다가 다시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모두 복원된 건물인데다가 그 안에 만들어 놓은 마네킹도 거슬리고, 마네킹의 눈썹이며, 수염같은 것들은 관람객의 손을 타서 다 뜯기고 없는 모습도 안되보이고...

 

복원된 고인돌 모형

고인돌 모형을 찍다가 넘어졌다. 연곡사에서 접지른 발목이 딱 그 자리가 다시 삔거다. 발목은 시큰거리고 겨우겨우 배낭을 챙겨서 읍성밖으로 나왔다. 읍성앞의 화장실에서 흙 묻은 옷을 갈아입고 대충 챙겨서 나왔다.

 

일단 터미널로 가서 영암까지는 가야 되는데 바로 가는 차도 걱정이지만 고창시내지도가 없어서 터미널도 찾기가 어렵겠다. 근처의 가게에 물어보니 "걸어서 갈만"하단다. 흠...그래서 또 열심히 걸었다. 다행히 한번 길을 잘못 들긴 했지만 금방 터미널에 도착했고, 영암으로 바로 가는 차는 없었다. 목포행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창밖으로 해가 진다. 바닷가에서 일몰을 맞아야 되는데 왜 이렇게 타이밍이 안 맞는지...

 

 

역시 창문 유리에 카메라가 비친다. 목포에 도착하고 보니 또 내가 언제 목포까지 와보겠나 싶어서 목포에 숙소를 잡고 내일 오전이라도 돌아볼까하는 마음이 생긴다. 마음을 다잡고 영암가는 표를 끊었다. 목포에서 다시 영암으로...밤 8시쯤이었다. 한시간쯤 걸린다는데, 버스가 말이 아니다. 모기에게 계속 뜯기고, 뒷자리의 고등학생인 듯한 애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버스기사는 주파수도 제대로 맞지 않는 라디오 방송을 크게 틀어놓는다. 아무리 이어폰 볼륨을 높여도 버스 라디오 소리와 애들 떠드는 소리를 제압할 수가 없다.

 

다 포기한 심정으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애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십원짜리 욕을 하면서. 잠깐동안 버스안에는 주파수 맞지 않는 음악소리만 크게 울렸다. 애들이라 그런지 금방 다시 재잘재잘...기사아저씨 룸미러를 힐끗 보더니, 전라도 사투리로 "너거들 다 죽고 잡냐? 콱 칼로 어쩌구 저쩌구..." 조폭출신이신가... 라디오 소리도 시끄럽구만...

 

다음 목적지는 영암 도갑사였는데, 일단은 영암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헌데, 버스가 도갑사 있는 면의 소재지를 지나간다. 어어~ 하는 사이에 지나쳐 버렸다. 잘 좀 알아볼걸. 그래도 다행인게 면 소재지에 여관도 보이고, 피씨방도 보이고 그래서 시간이 늦어도 좀 안심이 되었다.

 

 

덧붙임) 내소사 입구의 당산나무가 할머니 당산나무고, 경내의 당산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다른 글에서 입구의 당산 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라는 글을 보고 일단은 수정을 했다. 크게 중요한건 아니지만, 틀린 정보는 문제가 있으니...

 

답사기를 쓸 당시에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참고해서 틀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수정 해놓고 내일 책을 다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