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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7일 전라도 일주(3) 실상사, 경기전, 금산사 본문

지구별 여행자

2003년 6월 17일 전라도 일주(3) 실상사, 경기전, 금산사

푸른밤파란달 2020. 10. 16. 18:40

자고 일어나니 방안 가득 하루살이들의 시체다.  청소도구도 없고 휴지를 조금 뜯어 쓸어 모아보니, 한 움큼은 나온다. 대충 방을 치워놓고 민박집을 나왔다. 6시쯤. 일과를 일찍 시작하면 왠지 하루가 더 길 게 느껴진다. 환할 때 보니, 거기가 뱀사골 입구였다. 남원이 지리산이랑 이렇게 가까운줄 몰랐다. 일단은 어제 도착지점까지 가서 실상사를 물어봐야겠다. 열심히 걷는다. 기분이 좋다. 룰루랄라 거리면서 걸어간다. 지리산 계곡의 바위들은 엄청 크다.물소리도 시원하다. 새소리도 정겹다. 오늘은 어디어디 갈 수 있을까... 

 

 

한참을 걸어도 걸어도 면사무소 소재지가 안 보인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덥다. 걷기 시작한지2시간, 발 아프다. 걷기 시작한지 2시간 30분, 그 경찰관 아저씨들 미워. 버스라도 다니면, 타고 가겠구만. 혹여 차라도 지나가면 히치라도 하겠구만. 뭘 구경이나 할 수가 있어야지. 겨우겨우 9시가 다 되가는 시간에 산내면, 버스 내린데 도착했다.

 

이정표 확인해보니 뱀사골입구가 8.2Km란다. 아침부터 그 거리를 걸어서 나온 거다.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다. 그래도 가야된다. 실상사 물어보니, "걸어서 갈만합니다"라는 대답. 어째 좀 겁이 난다. 또 한참 걸어가야 되는거 아닌가. 여튼 또 걷는다. 그리고, 실상사 입구에 도착했다. 해탈교 앞 매표소, 아직 출근전이다. 매표소 주변에 무수한 민박집을 보니 화가 난다. 거기서 잤으면, 벌써 다른 데로 떠났을 시간인데... 인간의 마음은 이리도 간사하다.

<해탈교에서 바라본 지리산, 멀리 있는 봉우리일수록 색깔이 하늘색을 닮아간다.>

 

해탈교를 건너가는데, 하천 한쪽에선 수해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작년 여름에 난 수해를 이제 복구하고 있다니...곧 장마가 다가오는데 말이다. 쯧쯧...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다.

 

<천하똥장군과 지하흙장군이란다.>

 

 

<돌장승>

   

해탈교를 건너기 전에 돌장승 두 개, 건너고 두 개였는데 다리 건너기 전에 있던 것중에 하나는 오래전 수해로 휩쓸려갔단다. 남아있는 나머지 하나는 가게집들에 둘러 쌓여 미쳐발견을 못하고 다리를 건넜다. 세워진지 얼마 안되는 목장승과 길 양옆에 놓여있던 돌장승 두 개. 눈이 퉁방울같이 땡그랗다. 코는 주먹코처럼 뭉툭하고 나무그늘에 쉬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장승 구경하면서 한숨 돌리고 다시 조금 걸어가니,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감자캐기 현수막이 붙어있다.

 

인드라망...발음하는 것이 재미있다. 역시 평일이라 그런지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없고, 절 입구는 요란하게 공사중이다. 제대로 등산복을 갖춰입은 아저씨 한분이 성큼성큼 그 공사중인곳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가는데, 뒤따라갈려니 일하시는 분들이 위험하다고 돌아가란다. 옆으로 돌아서 절집에 들어서고 보니, 산이 아닌 평지에 자리잡은 절이 신기하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잘 생긴 탑 두기가 눈에 들어온다. 상승감이 끝내주는 잘 생긴 탑들이다. 다만, 지금까지 상륜부가 제대로 남은 탑을 못 봐와서 그런지, 탑신부에 비해 상륜부가 너무 긴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주사기 같은 느낌이라 왠지 찔릴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감은사지 탑을 복원할때 실상사 탑의 상륜부를 참고했다고 한다.)

 

 

<보광전과 석등>

 

탑을 지나면, 석등 하나와 대웅전 자리에 보광전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이 있다. 석등이 아주 예쁘다. 역시 귀꽃이 크게 달리긴 했지만 그리 눈에 거슬리진 않는다. 화사석엔  창이 8개다. 그리고 튀어나온 부분마다, 연꽃과 줄무늬가 조각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석등에 불을 켤 때마다 올라갔음직한 돌계단이 특이하다.

 

 

그동안 보아온 석등들은 정말 불을 켜기 위한 시설이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딛고 올라가는 돌계단을 눈으로 보니, 초롱을 들고 돌 계단을 올라가시는 스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아쉽게도 철책안에 갖혀있어서 돌계단은 못 디뎌봤다. 지리산쪽의 절들은 모두 석물의 조각들이 섬세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것 같다.

 

 

화엄사 석등이나, 연곡사 부도나 모두 섬세한 조각들, 돌을 다루는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보광전 왼쪽에는 칠성각, 오른쪽에는 약사전이 있다. 약사전에 가서 보물 제 41호 철조여래좌상을 뵈었다.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

 

평일 아침이긴 해도 공사중인 관계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어 사진을 찍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마음이 급해서 인지 몇 번을 다시 찍었는데, 이 사진도 좀 흔들렸다.  왜 굳이 사진으로 찍어야 되냐면, 한꺼번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나같이 가짜 답사객에겐 여기가 저기같고, 저기가 여기같기 때문이다. 약사전 앞쪽에 있는 명부전을 돌아본다.

 

<명부전 문에 붙어있는 한글 설명서>

 

나처럼 한문이 짧은 사람에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다른 절집에서도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을 위해서 간단한 설명 정도 붙여놔주면 얼마나 좋을까. 갈따마다 책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그정도 공부는 기본으로 해야겠지만, 불교가 대중에게 한발짝 더 다가서고, 이해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명부전은 저승과 관련된 전각이다.

 

들어서면 이런저런 할아버지들이 잔뜩 앉아계신데, 역할에 따라 자세와 들고 계신 것들이 다르다. 입구의 양쪽은 금강역사들이 때릴 듯이 팔을 치켜들고 서 있다. 절집보다는 저 문에 붙은 설명서가 더 맘에 든다. 

 

 

<명부전에서 바라본 석탑>

 

일과의 시작이 늦은탓에, 대충대충 훑어보고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여행의 딜레마이다. 많은 곳을 둘러보느냐, 한곳을 깊게 보느냐...이론은 한 두곳을 보더라도 제대로 보자는 것이지만, 실제에선 늘 욕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보광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극락전 표지판이 있다. 꽤 떨어져 있는데, 옆으로 가니 바로 연못이 나온다.

 

<극락전 앞 연못>

 

연꽃은 흔히 진흙이나, 썩은 물에서 피는 것으로 비유되지만, 사진 찍을땐 몰랐는데 큰 사진으로 보니 물이나 연잎이나 너무 지저분하다. 그런 지저분함 속에서 저렇게 예쁜 꽃이 피다니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옅은 분홍빛을 띄고 있는 수련, 아름답기만 한데...

 

 

극락전 앞에 부도와 비신은 없어진 부도비가 있다. 증각대사 부도비란다. 앞에 있는 표지판에는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라고 적혀있다. 그냥 간단하게 "증각대사 부도비" 이렇게 적어놓아도 좋을 것을. 

 

비석을 받치고 있던 거북이는 생긴 것이 꼭 뚱뚱하게 살이 찐 물개같다. 머리가 용머리가 아니라 거북이 머리다. 비바람에 심하게 마모되어 거북이가 살아온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증각대사 부도비>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
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

극락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잡풀이 우거진 길을 조금 걸어보면 수철화상 부도가 나온다.증각대사 부도와 거의 유사하게 생겼는데, 조각이 조금더 단순해진 느낌이다. 지붕돌의 곡선이 경쾌하다. 조금 떨어진 대숲의 수철화상 부도비는 안타깝게 볼 수 없었다.

 

사면을 노란 비닐같은걸로 포장해놓고, 그 앞에 세척공사를 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날짜를 보니 겨우 며칠전에 시작했다. 오호 통재라...내가 언제 다시 실상사에 와 본다고. 보고가면 좋으련만...아쉬운 마음은 얼른 접고 빨리 빨리 움직여야지. 절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물통을 채우고 녹차가루를 풀고,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그늘에 앉아 절집 구경을 한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너무 좋다. 다만, 공사중이라, 입구에 아무렇게나 세워놨던 배낭은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나가려다, 절 입구에 있는 찻집 앞에서 맷돌을 발견했다.

 

지역의 차이인가... 어렸을적에 외갓집에서 보던 맷돌이랑 많이 다르게 생겼다. 이게 사용하는데는 더 편할 것 같다. 점점 잊혀져가는 물건이다.

 

 

다시 산내면까지 나갈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힌다. 그렇다고 주저앉아있을 수도 없고 배낭을 매고 다시 산내면을 향해 가는데, 남원 버스보다 함양버스가 더 많이 다닌다. 통일신라 구산선문중 제일 먼저 문을 연, 실상사. 내 등 뒤로 점점 작아져 간다. 왔던길을 돌아 처음 내렸던 슈퍼앞으로 가서 아이스크림 한 개 먹으며 남원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시간표 앞에 붙어있다는 퉁명스런 대꾸가 돌아온다.

 

 

남원에서 바로 다음 목적지인 부안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전주에서 갈아타기로 하고 전주로 가면서 아우라지님에게 전화를 했다. 예정에도 없던 전주를 가게 된터라, 짬을 내서 시내에 뭐 볼만한 것이 없나 물어보고 두세시간 돌아볼 생각이었다. 아우라지님, 꼭 자판기 같다. 동전을 넣고 원하는 것을 누르면 바로바로 나오듯이....전주라고 하니 줄줄이 나온다. 그리고 익산을 추천하신다. 경주같은 느낌이라고 하니, 나도 가보고 싶어진다.( 가길 잘 했는지 못했는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그래서 전주에 도착하면,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북편을 사서 익산에 들르기로 결정했다.

 

 

전주 이씨 시조의 위패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곳이경기전이다. 입구의 사진은 찍어 놓은 것이 없다. 아이들이 소풍을 왔는지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그늘에 앉아서 방금 산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북편을 펼치고 보니, 전주는 빠져있다. 힘들 게 걸어다닌 보람도 없이. 큰 배낭에 쑤셔넣고 시내지도를 펼쳐보며 하루 일정을 정해본다. 익산을 가게 되면 오후는 전주에서 보내도 될 것 같으니 경기전과 풍남문을 보고, 전주국립박물관을 갔다가, 금산사에서 일몰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벽위에 있다는 한벽당이란 누각과 한옥마을, 전주객사 등에 관심이 갔지만 적당히 할 때는 적당히 해야 된다. 

 

대충 머리속으로 일정을 짜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주사고를 타나내는 비석이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곳말이다. 비석만 눈에 띄길래, 비석밑에 지하에 보관했나...뭐 그런 생각을 했다. 뒤에 보니 전각이 크게 있었다.

 

<전주사고>

사고 뒤쪽으론 전주 이씨 시조 이한 할아버지의 위패가 있는 조경묘가 있었는데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어서 까치발을 하고 겨우 담장너머를 홀낏 보고 돌아서야 했다. 다시 처음 입구쪽으로 가서, 태조와 몇몇 임금들의 영정을 구경했다. 세종은 생전에 고기를 좋아해서 영정과는 달리 뚱뚱하였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왕들의 영정앞에는 위패을 옮길 때 쓰던 가마같은 것들이 진열되어있었다.

 

<위패를  옮기던 가마, 언뜻 보면 관처럼 생겼다.>

 

다시 전주 사고가 있는쪽으로 나가니, 왠 부도가 보인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던 나라인데, 태조영정을 모신곳에 절에나 있음직한 부도가 왠말인가 싶어 그쪽으로 가본다.(나라는 숭유억불이었지만, 왕실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스님의 부도가 아니라, 예종의 태를 묻은 태실비였다. 꼭 스님들의 부도와 부도비같이 생겼다.

 

다음 목적지 풍남문. 전주성의 4대문가운데 남아있는 남문이다. 지도상으로는 경기전 바로 옆인데, 우뚝 솟아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잘 안보인다. 날씨마저 흐려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길가는 아저씨께 여쭤봤다.

 

<풍남문, 전주4대문중 남문>

나:  아저씨 풍남문으로 갈려면 어느쪽으로 가야 되죠??

아저씨: 풍남문? 잘 모르겠는데...풍남문.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지??

나: 네에... 감사합니다.

아저씨: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더라.

 

 

인사를 하고 갈려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기억이 난 듯,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있단다.정말 몇 걸음 안가서, 풍남문이 나왔다. 그 아저씨 왜 갑자기 생각이 안 났던걸까... 풍남문만 남기고 성벽은 모두 사라진터라, 문을 둘러싸고 로터리가 형성되어있었다. 버스들이 모두 풍남문을 한 바퀴 돌아간다. 근데 문주위로 낮은 예의의 그 녹색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인적이 드문곳이면 망설이지 않고 담장을넘어가겠지만, 버스가 쉴새없이 다니고, 한쪽은 남부시장이라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망설여진다.

 

근처의 문구점에 가서 성문안에 못 들어가냐고 물어보니, 들어가는 입구가 있단다. 길을 건너 입구는 찾았는데 커다란 자물통으로 잠겨있다. 에잉...할 수 없다. 사람들이 보던가 말던가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갔다.

 

<풍남문, 입구의 치>

 

 

 

 

성벽이 굉장히 예쁘다. 돌 다듬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냥 사각형으로 자른 것이 아니라 모서리와 모서리가 서로 물리게끔 쌓아져 있다. 벽돌형으로 쌓는 것보다 훨씬 견고하겠지만 그 모서리 모양을 다 계산해서 두부자르듯 정확하게 잘라야 했으니, 돌을 다루는 사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제일 아래쪽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다. 불국사였나 부석사였나, 석축 쌓을 때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에 맞춰서 다듬은 돌을 쌓은 것을 봤었는데...에잇...기억력하고는. 성벽이 너무 좋아서 또 한참을 쳐다본다.

<풍남문, 성문>

 

  반원형의 치를 돌아서 입구로 들어가니, 나무문에 철판을 덧대어 놨다. 불화살공격을 막기 위한 것일까...아주 꼼꼼하게 철판이 덧대어져 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문에 오르니,주변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풍남문 위의 화포>

 

<풍남문 위의 총안>

성문 위에서, 성을 향해 공격해오는 적들을 공격하기 좋게 아래로 비스듬하게 구멍들이 나 있다. 위에서는 아래를 공격할 수 있지만, 아래에선 위를 공격할 수가 없다. 성문위를 걸어다녀 보다가 내려와서 박물관가는 버스를 탈려고 거리를 헤매다 보니, 눈앞에 커다란 성당이 나타난다.

 

어랏, 전동성당이네. 이게 전주에 있었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곳이었던가...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이름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건물이 크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유럽의 성당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멋을 지니고 있다. 성당내부로 들어가니,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주 독특하다. 화려한 유럽의 그것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인물들의 상투머리가 인상적이다. 표현된 사람들 밑에는 한글로 이름도 적혀있다.화려하고 웅장한 대신에 소박한 멋이 있다.

 

<전동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헝가리 성당의 스텐드 글라스>

 

 

<전동성당 이층창문,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지만 빛 때문에 안 보인다.>

 

  남부시장 앞쪽으로 가서 박물관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바로 앞의 풍남문이 기세 좋게 서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주국립박물관 갈려면 몇 번타야 되냐고 물어봐도 아는 분이 없다. 지도를 꺼내서 이 동네로 갈려고 한다고 짚어줘도 모르겠단다. 유럽에선 말이 안 통해도 잘도 찾아다니고 묻고 그랬는데...할 수 없이 정류장에 서는 버스들 마다 옆구리에 적힌 경유지들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몇 번 차를 보내고 나서야 박물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니 또 나 혼자만 남았다.

 

박물관 입구에 내리고 보니, 바로 옆에 전주역사박물관이 있다. 시간은 겨우 두시간 남짓...6시 되면 박물관이 문을 닫을텐데. 두 곳다 둘러보기는커녕, 전주국립박물관 돌아보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검표하시는 분에게 배낭을 맡겨놓고 뛰듯이 걸어가는데,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쩔뚝쩔뚝...

 

전주국립박물관은 특별전으로 대한제국 고문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특별전시중에서 가장 볼 만했던 것은 경주국립박물관의 토우전시였다. 그 이후로 부슨 특별전시들 중에 재미있다거나 흥미를 끄는건 별로 없었다. 평일이라 관람객이 거의 없다. 마칠 시간도 다가오고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마침 물이 떨어져서 음료수 한캔 마시고 천천히 둘러볼려고 해도 마음이 급하다. 특별전하는 곳으로 가니, 예상과는 달리, 별로 재미가 없다.

 

<대한 제국 시대의 문서들>

이런 문서들의 전시일뿐이다. 역시 나는 물건들이 좋은데 말이다. 특별전은 대충 둘러보고 일반 전시실로 갔다. 익산에서 출토된 물건들이 전시 되어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다.

 

박물관 직원들이 퇴근 준비를 한다. 갑자기 사람들도 다 사라져 버리고 나혼자 커다란 박물관을 들쑤시고 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조용한 전시실에 바람 일으키듯 한 바퀴 휘젓고 나오길 몇 번. 도무지 마음이 안 편해 못 보겠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담부터는 시간이 촉박하면 박물관은 빼 버리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박물관을 뺄 수 없을 것 같다... 배낭을 찾아들면서 금산사 갈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물어보니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 이제 낯선 길 헤매는 것도 재미가 붙어서, 대충만 가르쳐주셔도 되는데 내가 걱정이 되는지 직원이 따라 나오면서 까지 버스 번호를 일러준다. 시내로 나가서 다시 금산사행 버스를 타야 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온다.

 

금산사.그냥 도심 외곽의 호젓한 산사이려니 생각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책에는 전주가 아예 나와있지 않고, 전주 시내 지도는 금산사 방향만 표시되어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나도 알 수가 없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금산사행 버스가 왔다. 한참을 간다. 이상한 산골로 꾸역꾸역 들어간다. 이러다가 오늘 중으로 전주로 못 나오는건 아닌지...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한다. 1시간 넘게 달려서, 결국은 또 버스에 나 혼자 남았다.  그리고 아저씨가 내려준 것은 커다란...아주 커다란 주차장이었다.

 

그건 어느날, 다시 가본 부석사앞의 대형주차장 만큼 나를 놀라게 했다. 걍 조그만 절이려니 했는데, 입구에 가게들이 빼곡하고 주차장엔 대형버스도 십여대 주차해있다. 매표소에 배낭을 맡길려고 하니, 관리사무소로 가보란다. 다시 거길 가니 곧 퇴근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돌아나오는데, 거기 여직원 하나가(부담스러운 눈화장 때문에 눈 마주치기가 겁났다.) 공원은 7시까지 개방한단다. 그게 아니고 배낭맞길려고 한다니까,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 그냥 웃으면서 고맙다 하고 나왔다.

 

절 입구 답지 않게 절로 가는 길은 산책로와 체력단련장, 야영장까지 갖추고 있다.  외국인 두명이 커다란 배낭과 텐트를 지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다음에는 동생넘꼬셔서 야영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절초입까지가 굉장히 넓은 공원이다.

 

<금산사 입구의 견훤석성의 흔적>

 

왠지 대박하나 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넷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가 다른 아들들에게 붙잡혀 유폐된 곳이란다. 절로 가는 길이, 참 좋다. 나무가 우거진 평평한 길을 혼자 걸어가는 기분... 통도사 가는 길과 닮았다. 꽤 넓은 길 옆으로 벤치들이 많이 놓여져 있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도 한참 걸어가야 한다. 데이트 코스로 아주 좋다. 그래서 절집에서도 연인들을 몇 쌍 봤다. 드디어 절입구 도착, 작은 개울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간다. 경내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당간 지주.사진에는 왠지 뭉툭하게 나왔지만 시원스럽게 위로 뻗어있다. 윗부분의 둥근 곡선은 한복의 곡선을 닮았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을 준다.

 

 

대충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뒤적거리니 김제편에 금산사가 나온다. 휴우...다행이다. 7시 되면, 다 나가야 된다고 관리하는 분이 뭐라 하던말던 책을 펼쳐놓고 읽었다. 뭘 알아야 봐도 볼 것 아닌가...

 

<금산사 경내, 책보다 말고 한컷>

 

 

<보제루 아래에서 본 대적광전>

 

정면에 보이는 보재루 아래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다시 넓게 트인 공간이 나타나고 오른쪽에 3층의 미륵전이 보인다. 거대하단 느낌이 든다. 전라도쪽에선 다층의 전각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쌍봉사도 그랬고, 화엄사, 그리고 금산사까지...

 

<금산사 미륵전>

해질녘이라, 사진이 많이 어둡다. 억지로 밝게 해보려 해도 기술이 없어서 잘 안된다.  꽤 거대한 건물인데도 답답하다거나 그런 느낌이 없다. 절집자체가 전각이 많이 없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건지도 모르겠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아마 주말이었으면 전혀 다른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1층엔 대자보전, 2층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고 각 층마다 현판이 따로 걸려있다. 하지만 내부는 통으로 뚫려있고 동양에서 가장 큰 미륵입상이 모셔져 있다.사진이 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 절집 마당에는 석물이 3가지 있다.

 

<미륵전에서 바라본 경내>
<보물 제 23호 석조연화대좌>

 

<보물 제 27호 육각다층석탑>

 

특히 육각다층석탑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탑의 개념을 확실하게 깨어준다. 얼마전 영양답사때의 모전석탑도 특이했지만, 지붕돌만 켜켜놓여있는 듯한 검은색의 이 탑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다. 지붕돌 끝부분이 아주 날렵하게 들려있는데 사진에 잘 나타나지 않아 아쉽다. 나머지 하나는 보물 제 22호 노주석인데,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절집이 앉은 터는 꽤 넓은데, 건물들은 그닥 크지 않고, 전각이 몇채 없어서 전체적으로 한적한 인상을 준다. 해인사의 그 골을 이루던 높은 용마루에 비하면 훨씬 절집 답다.

 

<대장전>

 

미륵전과 마주보고 있는 전각이다. 미륵전에 비해 너무 왜소해보여 절집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운 듯한 느낌이 들 게 한다. 원래는 목탑이었으나, 인조 13년에 중건되면서 불전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에 복발과 보주가 남아있어, 목탑의 흔적을 알 수 있다. 보물 제 827호라고  한다. 대장전 앞 석등은 지붕돌이 너무 커서 어린애가 어른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상대석의 연꽃이 이제 막 피어나는 듯 오무려져 있다. 화엄사의 석등이 거의 수평을 이루던 것과 대조적이다.

 

<대장전에서 바라본 미륵전>

 

미륵전 왼쪽으로 방등계단이 있는데, 딱보기에도 높은 축대위에 있어서 올라가고픈 마음이 싹 가시게 한다... 대적광전 뒤쪽에 배낭을 세워놓고 꾸역꾸역 올라간다.

 

<방등계단 가기전, 나한전>

 

방등계단 오르기전에 나한전이라고 쓴 현판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글씨나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괜히 좋다. 한참을 쳐다보고 이리찍고 저리 찍고 했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문짝의 꽃창살이 더 이쁘다. 아쉽게도 꽃창살 사진은 하나도 없다.

 

 

 

 

<방등계단>

 

통도사의 금강계단처럼,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곳이란다.넓은 석단의 한가운데에 올려져있는데, 역시 아쉽게도 석단 전체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없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사진을 찬찬히 찍을 여유가 없었다. 이때 저쪽 어딘가에서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게 뭔 소리인가 살펴볼 여유가 없다. 사진 찍고 둘러보기 바쁘다.

 

 

 

 

<방등계단과 오층석탑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상들>

 

<방등계단앞의 오층석탑>

 

 

<오층석탑과 방등계단>

방등계단이 있는곳이 송대라 불리는 곳인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미륵전 처마끝이 아주 좋다.

 

 

<송대에서 바라본 미륵전 외벽화>

 

위에서 내려다보니, 미륵전 외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보인다. 그보다 더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건 온갖 낙서들이었다. 어떤 녀석들인지 정말. 다정한 연인들이 나타나서 그 낙서들을 낄낄거리며 읽고 있다. 기분이 좀 상해서 내려갈려는데,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진다. 소리나는곳을 보니 폭죽소리가 아니라 법고 두드리는 소리였다. 북가죽말고 테두리의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법고 치는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소리가 참 좋다. 끝나기 전에 서둘러 가방을 메고 그쪽으로 갔다.

 

큰 배낭을 매고 사진을 찍은 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흔들려서 엉망이다. 스님은 한곳에서 북을 두드리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가면서 치는데, 그 소리, 그 리듬, 그 몸짓 하나하나가 아주 감동적이었다. 법전사물은 상징적인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소리가 산전체에 울려퍼져 기분좋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아주 열정적으로 법고 두드리시는 스님을 뒤로 하고, 돌아서 나왔다. 아직, 전주로 돌아가서 잘지, 금산사 입구의 민박에서 잘지 결정을 못한 탓이다. 다시 보제루 아래로 내려가려다, 그곳에 걸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신영복 이라는 이름이 반갑다. 이렇게 대충 금산사를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며, 절밖으로 나왔다. 깊은 산속은 아니더라도, 해는 금방 서산으로 넘어가 버려서 7시가 채 못된 시간인데도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왠 커플이 열심히 걸어오길래 모른척 할까하다가 지금 가면 절안에 못 들어간다고 일러주니, 상관없단다. 하긴, 절 바로 앞까지 가는 길도 좋지...양쪽으로 우거진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레가 갉아먹은 자리만큼씩만 하늘이 보인다.

 

다시 대형 주차장앞으로 가서 버스 내렸던 곳에 서니, 김제로 가는 버스와 전주로 가는 버스 타는곳이 나란히 있다. 바로 김제로 가 버리면 오늘 안으로 부안에 도착할텐데, 망설여진다. 자유롭고자 떠나는 여행이지만, 나 스스로가 만든 일정에선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자꾸 떠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닐 날이 오겠지. 어떤 것도 나를 막지 못하는 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