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03년 6월 15일 전라도일주(1) 소쇄원, 운주사, 쌍봉사 본문

지구별 여행자

2003년 6월 15일 전라도일주(1) 소쇄원, 운주사, 쌍봉사

푸른밤파란달 2020. 10. 15. 13:42

사는게 늘 계획대로만 된다면 괴로움도 없겠지만, 또 뜻밖의 기쁨도 없을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때문이라도 가끔은 살 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언젠가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에 썼던 구절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者" 라는 말 처럼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건 또 다시 내려와야 되는걸 굳이 힘들 게 산을 오르는 것을 내가 이해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계획이라면 6월 9일에 출발해서 15일에 사람들과 합류하여 돌아오는 것이었다.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뿐. 15일 단체 답사 후에 개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그냥. 좋아서. 하고싶으니까... 대답이 부족하더라도 그것만이 진실이다. 누가 나에게 그랬다. 그 돈과 시간으로 차라리 맛있는거 사먹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실컷보라고... 물론 영화도 맛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떠난다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돈과 시간이 같이 많아도 못 떠나는 사람은 못 떠난다. 떠나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떠날 수 있지만, 또 그 마음먹기가 얼마나 힘이 든지...

적당한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이고 떠나는 여행이란 그리 편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굉장히 이기적인 것 같지만...흘러가 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그리고 누구보다 후회를 많이 할 것을 알기에 배낭을 꾸릴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을 설친 탓일까, 커피마저 까끌까끌하게 느껴지는 새벽이었다. 모닝콜 해주기로 했는데, 알람에 깨어나지 못한 민망함 때문일게다. 자욱한 안개속에 강물에 비쳐있는 나무 그림자가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몇컷 찍었지만, 너무 짙은 안개로 흑백사진처럼 나왔다.


 

1. 소쇄원

오늘은 답사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움직인다. 목적지는 소쇄원-운주사-쌍봉사...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다. (역시 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길이 꽤 멀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경치구경에 정신이 없다. 졸음도 밀려오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스타일 구길 수 없어 눈에 힘을 잔뜩 준다.   

소쇄원...얼마나 가보고 싶은 이름이었는지. 그러나 갔다온 사람들은 모두 실망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하늘끝으로 올라가는 기대를 자꾸 땅끝으로 끌어내리면서도 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곳의 입구는 굵고 길 게 쭉쭉 뻗은 대나무 길이었다.

<대나무 홈통으로 물길을 만든다>

 

대나무숲길을 지나, 자그마한 정자들이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한다.


꽤 넓은 터에, 계곡 물을 끌어들이고, 대나무 홈통으로 물을 이리저리 운영하고, 바위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오곡문, 소쇄원으로 물이 들어오는 곳> 
<속을 파낸 통나무를 이용하기도 한다>

 

광풍정에는 소쇄원을 찬양하는 많은 글들이 걸려있고, 한쪽 벽에는 [소쇄원도]가 걸려있어 예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마침 제월당 아궁이에 불을 때는 중이라 뒤쪽에 있는 굴뚝에서 장작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제월당 옆에는 석류나무가 손톱만한 꽃을 잔뜩 달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날려서 빨간 꽃비가 오는 듯 했다. 담벼락의 치자꽃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대고, 석류나무 옆에 있는 살구나무는 살구가 몇알 열렸다. 바닥에 떨어진걸 누가 줘서 하나 먹어 봤는데...살구를 처음 먹어봤다.


마침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를 나와서 눈 돌아가는 카메라들이 아주 많았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데 부럽다.^^;




2. 철당간, 식영정

 

 

소쇄원에서 나와서 식영정으로 갔다. 광주호 물길따라 가는 길이라 창밖으로 바라보는 경치도 훌륭했다. 식영정으로 올라가기 전에 송강 정철시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꾸물대다보니 일행의 끝자락이라 자세히 보진 못하고 서둘러 따라 올라갔다.

 

글씨를 잘 모르지만, 식영정에 걸린 현판이 참 예쁘다. 글씨도 글씨지만 현판 둘레에 조각된 무늬들도 아주 섬세하다.(사진이 잘 안나와서 ㅠ.ㅠ)날씨가 햇볕이 짠~한 밝은 날이 아니라 그런지 사진이 영 선명치가 않다. ( 핑계가...-_-;;)

 

다음 목적지는 명옥헌. 광주호 물길따라 면앙정, 취가정, 환벽당등 정자들이 많이 있다. 사실 명옥헌 갈 때는 어데 가는지도 모르고 차에 앉아있었다. 입구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명옥헌 가는 길은 공사중이라 다 파헤쳐져있어서 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가지가 늘어진 나무나 한컷 찍고 돌아설 수 밖에...버드나무인가...

다음 목적지...읍내리 당간과 오층 석탑. 담양에는 대나무 만큼이나 많은 메타쉐콰이어나무들이 줄지어 가로수로 심겨 있었다. 레고 블럭의 나무들 같아보인다. 꼭 수박바 아이스크림 같아 보이기도 하고. 길을 몰라 헤매다 논 한가운데 있는 탑을 발견했다. 탑 근처에 당간이 있다.

가끔 차들이 다니기도 하지만, 그냥 텅빈 길이나 다름없다. 저 멀리 이 길의 끝에 당간이 서 있다. 한무리의 답사팀들이 열심히 길눈이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모두 나이가 많으시다. 그러나 그 열정만큼은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대부분 자료집에 메모를 하고 계셨고, 길눈이의 설명에 따라 높이 솟은 당간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셨다. 혹은 사진을 찍고, 혹은 메모를 하는 그 분들앞에 소풍 나온 듯 좋아라 했던 내가 많이 부끄러워진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당간이다. 보통 절에 세우던 당간은 돌로 된 당간지주에 나무로 긴 당간을 세우고, 당이라는 일종의 깃발을 단다. 당은 법회나, 공지사항을 알리는 일종의 포스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내 생각이다. 나도 잘 모른다.-.-) 여튼 읍내리 당간은 그 모양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어 보물 제 505호로 지정되어있다. 중간 부분까지는 나무로 되어있고, 윗부분은 쇠로 되어있어 무사히 남은 것이다. 고개가 아프도록 당간을 보는데 (당간을 실물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그 답사팀들이 석탑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재빨리 쫓아간다.

 


읍내리 오층석탑

그 답사팀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왔다던가... 여튼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논 한가운데 서 있는 탑 하나를 몇겹으로 둘러서서 설명하시는 분의 말씀 하나하나를 다 메모하고 계셨다. 솔직히 탑보다는 그분들이 더 경외스러웠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탑의 오른쪽이 딸기밭이었는데, 서울서 온 양반이라 그랬는지 그게 뭔지도 모르고 다 짓밟아놓은점이다. 그 밭주인은 나중에 와보면 얼마나 황당할까...답사도 좋지만 남의 재산을 함부로 생각해선 안되는데...

석탑은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생겼다. 시원하다는 말 말고는 도무지 어떤말을 갖다붙여야 될지 모르겠다. 오층석탑임에도 삼층석탑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부쩍 다층 석탑을 많이 보게 된다. 그전에는 늘 삼층석탑만 봐와서, 왠지 5층, 7층 되는 석탑을 보면 가짜 같이 느껴졌는데 이 탑, 참 좋다.

 

당간과 탑이 있는 걸로 봐서...지금은 논밭이 된 곳은 아마도 고려시대엔 절이었을듯...




3. 운주사

드디어, 운주사. 다음 목적지는 퇴마록 말세편에서 처음 그 이름을 알 게 된 운주사다. 그때 소제목이 아마 "와불이 일어나면..."이었을 것이다. (벌써 10년전이니 틀릴수도 있고) 얼마전에 직장동료가 보성간다고 코스 짜달라고 할 때 운주사를 넣어줬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진을 보고 나도 꼭 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가게 되었다. 길을 한참 돌아돌아 도착한곳, 천불천탑동. 지금 내 컴퓨터 위에 걸린 달력(올해 초 거금 15000원을 주고 산 유홍준님의 답사달력 )이 아직도 1월인 것은 눈덮힌 천불천탑동 사진 때문이다. 비록 지금 남은 것이 천불천탑이 되진 않지만, 눈길 가는 곳마다 무수한 탑들과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책에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다고 나오지만, 금박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그리고 곧 정원에 정원석을 배치해놓듯...산과 산 사이에 늘어선 탑들의 행진을 보게 된다. 길가에 세워진 이런저런 석불들과 함께...

운주사에 얽힌 전설. 우리나라 지형이 배모양인데 영남에는 산이 많고 호남에는 산이 적어 배가 동쪽으로 기울어 땅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란다. 그래서 도선국사가 하루밤동안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외에도 무수한 전설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계곡 하나를 가득 메우는 탑과 석불들은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아무렇게나 서있는 석탑과 석불들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석탑과 석불을 조성한 사람들은 분명 권력이나 부를 누리던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주 번듯하게 탑과 불상을 세웠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기대어 져 있는 석불들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으나, 세상이 바뀌길 바라나는 간절한 민초들의 마음을 닮았다. 그 마음이 이렇게 많은 석불과 석탑을 만들었으리라...


 정교하다거나, 안정감이나 상승감이 느껴지는 탑들은 아니다. 아무 장식이 없이 단아하기만 하던 지금껏의 석탑들과는 달리 몸돌이나 지붕돌에 빗금이 그어져 있거나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미스테리 서클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어쩌면 정말 외계인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돌로 된 집모양안에는 앞뒤로 다른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이런 형태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마냥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돌집 뒤에 있는 탑 역시 같이 같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빵떡탑" 이라는데 둥글 넙적한 지붕돌?!이 그저 황당하게만 다가온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들을 산산이 깨부수는 곳이다.


절집이 최근에 들어선 새거다. 나는 새삥은 왠지 싫다.-.-; 이 탑들과 불상 역시 처음 조성될 때는 새거였겠지만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인간의 숨결을 버리고, 자연의 숨결을 가졌다. 그래서 오래된 것들이 좋다. 인간냄새가 거의 안나기 때문이다. 마냥 풀처럼, 나무처럼, 바위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좋은거다.


절집을 지나, 공사바위라는 곳을 오른다. 그곳에서 보면 천불천탑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석불석탑을 조성할 때 그곳에서 감독한 것처럼 보여서 이름도 공사바위란다.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공사바위에서 시원한 커피 한잔 하고, 다시 내려와서 이번에는 와불로 올라간다. 와불이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을 간직한곳...힘들고 가파르다. 계단이다. -.-;;; 싫다...ㅠ.ㅠ


그래도 올라가야 된다. 쳐지니까 앞에서 자꾸 불러댄다. 걍 냅두면 알아서 쫓아가겠구만... 가다보니 옆으로 기울어진 바위위에도 탑이 만들어져 있다. 저 바위돌위에 탑을 우째 세웠을까나. 바위의 경사에 맞춰 탑 아랫부분이 비스듬한 것이 꼭 바위에서 솟아 난 것 같다. 역시 이 탑에도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마치 흙으로 빚어서 칼로 이리저리 금을 그어놓은 것 같다. 지붕돌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쌓아놓은 작은 탑들이 잔뜩이다. 소망으로 무거운 탑.

 

 




 

 힘들게 와불이 있는 곳으로 가니, 와불은 와불이 아니다. 와불이란 누워있는 부처님인데, 자세가 누워있는 자세가 아니다. 다 완성되면 세우려고 했던 것 같은데 미완의 작품인 셈이다. 헌데, 세우려고 한 것 치고는 또 너무 얄팍하지 않나. 벽에 새겨진 부처님이면 또 몰라도 너무 평면적이다. 마치 무거운 물건아래에 깔렸던 것 처럼 말이다.

너무 거대해서 카메라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옆에 1m정도 높이의 단이 있길래 거기에 올라가서 찍었는데도 전체 모습이
다 안나온다. 언뜻 한분인 것 같지만 두분이 누워있다. 와불 옆에 일렬로 늘어서서 미스코리아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허리에 손 올리고 45도 각도로 서서 찍는 포즈. 사진사가 별걸다 요구한다. 땀을 식히며 와불을 보고 있으니 그 소박한 생김새에 웃음이 나온다. 아래로 반달모양인 눈, 삼각형같은 코, 여러겹의 주름, 아기손같은 손가락들... 얼굴 길이만한 귀까지... 이 부처님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와불을 지나 칠성바위쪽으로 내려왔다. 북두칠성 모양대로 동그란 바위들이 놓여있는데, 별의 밝기대로 크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둘걸... 맷돌처럼 생겼는데 지름이 2m쯤 되었던 것 같다.


4. 쌍봉사

 

석탑, 석불들을 질리게보고, 다음 장소 쌍봉사로 이동. 쌍봉사에는 부도가 볼 만하단다. 사실 절집을 다녀도 왠만해선 부도밭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냥 지나는 길에 보이면 먼 발치서 부도밭이네...그러구 말았다.

일주문이 아니었던걸로 기억된다. 여튼 몇계단 올라서면 삼층짜리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입구에 서 있던분이 공사 관계자인 듯...사진을 찍고 있는데, 잘 왔다고 내일이면 공사에 들어간다고 당분간 대웅전을 못보게 된다고 하신다.

 

왜 공사를 하냐니까, 대웅전 이층이 양 귀퉁이가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2층만 처마끝이 일자모양이다. 1층과 3층은 양쪽 긑이 살짝 들렸는데 이 건물은 1984년에 불타 없어진 옛 대웅전을 1986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겨우 20년도 안된 세월에 지붕이 내려앉고 있다니 씁쓸한 느낌이다. 



곧바로 국보 57호 철감선사 부도를 보러 갔다.

이렇게 화려한 부도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어쩌면 봤는데 의식을 못했을 수도 있고.) 오른쪽 사진은 영 기울어지게 찍혀서 속상하다. 통일신라 양식이라는데, 마치 요즘 그라인더로 갈아낸 것처럼 조각이 섬세하다. 돌을 이렇게 떡 주무르듯...다루는 기술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완벽한 조각이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수막새까지 조각되어있다. 아니 수막새에 연꽃무늬까지 대단한 정성이 아니고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요즘 기술로 만들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름답고 다양한 조각은 한참을 들여다 봐도 지치지가 않는다. 특히 기단부의 사자조각과 가릉빈가가 아름답다. 팔각의 각면에 새겨진 모양과 표정이 모두 다르다. 물고기를 물고 있는 사자조각이 특히 재미있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사람 머리를 하고 있는 가릉빈가는 귀여운 느낌이다.

 

 

부도 옆에는 부도비가 서 있었는데, 비석은 없고, 비석을 받치고 있던 귀부와 위에 얹었던 이수만 남아있다. 거북의 몸에 용머리를 달고 있는데 역시 조각이 섬세하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의 눈이 땡그랗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들고 있는 것도 귀엽고...


이제는 혼자 떨어져야 할 시간이다. 아까 낮부터 계속 그게 좀 맘이 심란했는데 결국은 그 시간이 와 버린거다.쌍봉사에서 마당을 뛰어다니는 다람쥐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좀 찍다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나는 충무로 가는 투투님 차를 얻어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일단 첫 출발지를 여수로 잡았으나, 순천이면 구례로 가도 좋고 하니 천천히 생각해볼 요량이었다.  

 

저번에 보성 갈때 내렸던 터미널이 보이기에 거기서 내렸다. 근처에 여관에 방을 잡고 터미널에 차 시간 확인하러 갔더니 고속터미널이라서 구례가는 차가 없다.

갑자기 뭔가 깨달음. 작년에 순천서 선암사 갔다가 보성갈려고 다시 순천시내로 들어오면서 이쯤이다 싶어서 내렸는데, 엉뚱하게 내려서 한참 걷다가 택시를 탔더랬다. 근데 그게 잘못 내린게 아니라, 우리가 순천으로 들어간건 고속터미널(부산->순천)이고 순천에서 보성가는 차는 공용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타는거였던 것이다. 나는 영 바보는 아닌데 너무 엉뚱하게 내렸다 싶었지 1년이 지나서 미스테리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