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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위협하는 ‘4대 라이벌’ 

이명박 대통령을 떨게 하는 ‘국내 라이벌’이 등장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초·중·고생, 대운하 논쟁 등을 거치며 ‘안티 이명박 벨트’를 굵게 형성한 지식인 그룹, 정부를 질타하는 1500여 시민사회 단체,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가 그들이다.

[37호] 2008년 05월 26일 (월) 09:11:06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연합뉴스 5월2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세 번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20%대 지지율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얼리덕(얼리+레임덕)’과 ‘노명박’이다. ‘얼리덕’은 취임하자마자 레임덕을 겪는다는 말이고 ‘노명박’은 갈수록 노무현 대통령을 닮아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 대통령 처지에서는 전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투사되는 것과 함께 이 대통령이 더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두 전·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는 표현 중 가장 뼈아픈 말은 아마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우고도 30% 지지율을 기록했는데, 이명박은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도 30% 지지율을 지키지 못한다”라는 것이리라.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의 진단은 더욱 절망적이다. 지금 이 대통령이 놓인 상황은 부동산값 폭등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부동산 폭등에 대한 국민 반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 반응이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치 이슈에 대해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국민이 반응했지만 요즘은 국민이 생활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의사 표시를 감정적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폭등이 노무현 정부를 ‘무능 정부’로 낙인 찍었듯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이명박 정부를 ‘거짓말 정부’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전임 대통령이 남긴 심리적 잔상이 보통 3~4년은 간다. 이 대통령에게는 노 전 대통령의 ‘불안한 정치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오버랩된 상태다”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평가가 억울할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참모가 모두 경제를 살리자며 부지런히 일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 환경이 좋지 않았고 유가마저 급등해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의 이런 상황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바로 5월22일의 대국민 담화였다. 대국민 담화의 논리구조를 거칠게 분석해보면 이렇다. ‘국민에게 깊이 사죄한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로 내가 잘못한 일은 없다). 다만 소통을 안 한 것이 죄다. 진짜 잘못한 쪽은 야당이다. 야당이 한·미 FTA에 대한 태도를 고쳐야 한다.’

‘소통’이 만병통치약?

이는 국민이 기대했던 표현과는 다른 것이었다. 국민은 다음과 같은 논리구조로 사과하기를 바랐지만 기대와 달랐다. ‘내가 잘못을 했다. 이것저것(한반도 대운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을 잘못했다. 그러므로 이것(한반도 대운하)은 안 하고 저것은(쇠고기 재협상)은 하겠다.’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대해 지난해 대선 기간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했던 윤여준 전 장관은 “사나워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사과한다기보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데 더 주안점을 둔 것 같다. 청와대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무엇을 진실로 생각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라고 평가했다.

조짐은 대통령의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났다. 친박연대 등 박근혜 전 대표 추종세력이 득세한 선거였지만 이 대통령은 자기가 승리한 선거로 해석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한 선거였고 수도권은 뉴타운 등 이명박 브랜드로 치른 선거였기 때문에 자기가 승자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진단이 달라지면서 해결안도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이후 친박 당선자 복당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담화 내용을 통해 분석해보면, 이 대통령은 지금의 문제가 국민과의 소통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보강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 담화에 이어 18대 국회 개원연설 그리고 취임 100일 시점에서의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소통 정치’를 해나간다는 ‘로드맵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정치권 전반의 분석은 현 상황이 소통 부족으로 인한 오해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국론 분열의 기점에 서 있다는 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런 분열이 생기면 지지층은 뭉치지 않는 반면 비토층은 뭉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 정부마다 겪은 딜레마다.

한나라당이 염려하는 것은 지지기반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특히 보수 세력이 양분되는 것이 위험 징후다.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로 나뉘던 보수의 이분법은 요즘 ‘원조 보수’와 ‘기회주의 보수’로 나뉜다. 최근 만난 한 보수단체 활동가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은 보수 세력을 가장한 기회주의자다. 이들은 김정일이 내려와 정권을 잡아도 협력할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한 당 관계자는 “집토끼와 산토끼 중에서 집토끼는 다른 주인을 찾아간다. 영남 집토끼는 박근혜 전 대표가, 보수 집토끼는 이회창 총재가 흡수한다. 산토끼는 이미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이 대통령의 손은 지금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표현했다. 

지지기반이 약해지는 동안 반대 세력은 불어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자기의 라이벌은 국내에 없고 외국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지율이 20%대로 급전직하하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떠올랐다. 이 대통령을 위협하는 라이벌은 크게 네 그룹이다.

“이명박은 초·중·고생과 싸운다”

ⓒ뉴시스 지지율이 하락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맨 왼쪽)를 끌어안았다. 



첫 번째 라이벌로 떠오른 그룹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이명박 댓글을 올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초·중·고교생이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지만,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이다. ‘압운’을 맞춰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지만, 이명박은 초중딩과 싸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손자 손녀뻘 되는 이들과 ‘맞장’을 뜬다는 것이다.


이들과 라이벌이 된 것은 이 대통령의 최대 비극이다. 이들과 라이벌이 된 순간 이미 승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라이벌과는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기는 것에 집착했다. 집회에 교사들을 내보내 감시하고 주동 학생에게 경찰을 보내 조사하고 참가 학생을 퇴학시킨다고 협박하는 등 대처 방식은 강경 일변도였다. 이런 대처는 부작용만 초래해 인터넷에서 ‘싫은 대통령’ 프레임만 강화했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라이벌 그룹은 ‘초중딩’과 대척점에 있는 지식인 그룹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을 거치면서 지식인 그룹에 ‘안티 이명박 벨트’가 굵게 형성되었다. 대운하 건설에 대해 서울대 교수 381명이 반대 성명을 낸 것을 시작으로 각 교수단체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는다.

흥미로운 점은 지극히 다른 이 두 그룹이 만나는 접점이다. <디워> 논쟁을 통해 극단에 섰던 ‘초중딩’과 미학자 진중권 교수는 ‘광우병 논쟁’을 통해 극적으로 만났다. ‘초중딩’들은 ‘이명박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진 교수에 열광했다. 슈퍼주니어 등 연예인 팬클럽 카페에까지 진 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대통령 지지율의 급전직하는 지식인 비판 그룹의 투지를 앗아갔다. 요즘 네티즌은 진 교수가 독설을 거뒀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주로 친노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한 논객은 “온 국민이 대통령을 비난한다. 글을 써도 차별화가 안 된다. 차라리 칭찬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가 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뽑았다’는 칼럼이 화제가 되었다. 취임 100일도 안 되어서 벌써 동정론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취임 100일도 안 됐는데 ‘동정론’ 등장

세 번째 라이벌 그룹은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 그룹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을 거치면서 환경운동 단체의 전열이 재정비된 데 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을 거치면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의 전열까지 재정비되었다. 1500여 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촛불집회를 주관한다.

정치권에서는 시민사회 세력에 힘이 실리는 것에 주목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이 아직 야당에 대한 지지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지만, 시민사회 영역이 복원된 터전 위에서 야당이 지지층 복원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여권에서는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야당도 세 확산을 이룰 것으로 내다본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라이벌은 박근혜 전 대표다. 이제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없으면 위험한 신세다. 한나라당 안팎에 국회의원 당선자 70여 명이 ‘친박근혜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뭉쳐 있다. 박 전 대표가 등을 돌리면 ‘여소야대’ 정국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지자 공천을 통해서 세 약화를 시도하고 총선 이후에도 외면했던 박 전 대표를 결국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를 양보하며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동반자 관계’라고 표현했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수도권 지도부론’을 들고 나왔지만 외면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어떤 정치 기반도 확보하지 못하고 떠밀리듯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정국을 이처럼 꼬이게 한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쏟아져 나온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에 대한 진단은 대체로 일치한다. CEO 리더십과 국정 리더십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다, 소통이 부족하다, 권한을 분산하지 않는다, 문제를 임기응변으로만 대처하려 한다, 네 가지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CEO 리더십과 국정 리더십의 차이를 모른다는 점이다.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과 과정을 중시하는 정치의 차이를 모른다는 지적이다.

소통과 관련한 잘못된 접근법도 지적된다. 국민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의 뜻을 따르라고, 소통하라고 말하는데 대통령은 자기의 소리를 듣고 자기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한 소통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국정홍보처를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대통령의 불만은 국민이 정책 성과를 몰라준다는 것이었다. 소통의 문제도 정책 홍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권한 이양하고 책임 나눠 ‘욕테크’ 하라

52개 생활필수품 가격을 직접 챙기고 102명의 기업 총수로부터 직접 애로사항을 듣고 5000여 명 인사 파일을 점검하며 밤낮 없이 일하는 대통령에 대한 세 번째 충고는 ‘권한을 이양하라’이다. 권한도 이양하고 책임도 나누어 적절히 ‘욕테크’를 하라는 것이다. 장관이 권한이 없으니 책임도 지지 않고 결국 대통령만 욕을 먹는 구조라는 뜻이다. 

마지막 고언은 “임기응변식 ‘꼼수정치’를 하지 말라”이다. “못생긴 마사지걸을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라는 말을 ‘발마사지사였다’라고 모면하는 것은 선거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대선 때는 의혹이 해명되지 않아도 새로운 의혹에 의해서 기존 의혹이 묻히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그건 전에 다 나왔던 얘기다’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당선한 뒤에는 달라진다. 완벽하게 해명되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누적된다. 한번 ‘고소영’ 수석은 영원한 ‘고소영’ 수석이고, 한번 ‘강부자’ 내각은 영원한 ‘강부자’ 내각이다. 영어 몰입 교육은 계속 ‘어륀지 해프닝’으로 남는다. 청와대의 임기응변식 대응에 대해 당에서도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영화 <올드보이> 캐릭터) 정치’라는 비난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었을 때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인적 쇄신 여부였다. 이상득 부의장-류우익 대통령실장-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 권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쇄신론은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없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것이 자기 죄라며 혼자 십자가를 졌다. 누구도 이 대통령과 십자가를 함께 메려 하지 않는 이 기형 상황이 계속되면 이 대통령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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