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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공포,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2008 05/27   뉴스메이커 776호

광우병에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우리 식탁 위협
채식 위주 식사 등 대안적 먹거리문화 관심 고조


 

지금 한국 사회는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공장형 축산 시스템이 생산해낸 값싼 쇠고기가 결국 우리의 뇌를 미치게 할 것이라는 공포다. 축사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산더미 같은 분뇨 덩어리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 저주받은 육류들은 죽어 사람의 몸의 일부가 되지만, 많은 경우 악성 세포가 되어 증식한다. 그들이 받은 ‘저주’가 사람들에게 이동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대규모 축산업은 인간에게 새로운 질병과 싸워야 하는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화두(話頭)다.

원래 미 대륙에는 소가 없었다. 소가 북아메리카에 상륙한 것은 지방질 많은 고깃덩어리, 스테이크를 하도 좋아해 ‘John Bull’이라고 불리는 영국인 등 유럽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목축업자들의 장삿속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를 키울 목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인디언과 버펄로를 몰아냈다. 이것이 미국인이 ‘cowboy’가 된 연유다.

육류는 순살코기보다 지방이 많이 섞인 고기가 훨씬 맛있다는 게 정설이다. 또 고기는 먹으면 먹을수록 기름기가 포함된 부위를 좋아하게 된다. 문제는 대초원에서 풀만 먹고 자란 소는 지방이 많지 않았다는 점. 지방이 충분히 포함된 쇠고기를 생산하려면 소를 비육우로 키워야 했고 축산업자들은 소에게 곡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마침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옥수수가 대풍으로 처치 곤란한 상태였다.

이후 단기간에 소를 살찌우기 위해 곡물 사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동물의 살과 뼈가 포함된 사료를 먹이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인 소는 곡물을 제대로 소화시키기 어려웠고, 게다가 동종의 내장과 뼛가루까지 먹이니 이상 증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광우병도 그 중 하나로, 소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문명비평가이자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의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유럽·북미의 육식문화는 이렇게 미 대륙의 곡물사료로 사육된 쇠고기가 최상층에 자리 잡은 인위적인 ‘단백질 사다리’를 지난 15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구축하고, 다른 나라들에도 이 사다리를 타도록 끊임없이 권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도 결국 이 사다리를 타라는 것. 리프킨은 “우리는 육식문화를 넘어서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원상태로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징표이자 혁명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사육되고 저주받은 생명들의 역습

 

‘미친 소‘를 먹지 않겠다는 시위는 단지 광우병에 대한 위협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닌,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우철훈 기자> 

육류가 일으키는 공포는 공장형 축산 시스템에 기인한다. 더 싸게, 더 자주, 더 많이 먹게 하기 위해 고안해낸 대량 사육 시스템은 동물의 생리를 단절해 온갖 질병을 창궐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축산업계에서는 돼지의 경우 160~180일, 닭의 경우 30~40일, 소도 길게 잡아 20개월 안에서 도축한다. 자연 상태에서 돼지의 수명은 10년 이상, 닭은 20년 이상 살 수 있지만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그들의 생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사육 환경 또한 비생명적이다.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살을 찌우기 위해서 좁은 곳에 가두는데, 알을 낳는 산란계의 경우 가로 세로 30㎝×50㎝ 정도 크기의 우리에 3~6마리를 수용하고, 돼지 또한 가로 세로 3m×4m, 또는 4m×5m 정도의 크기에 10~25마리를 수용한다. 좁은 공간과 고온은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닭은 옆의 동료를 쪼아대고, 돼지는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공장형 축산 시스템은 사육장을 넓히는 등 사육 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아예 닭의 부리를 잘라버리거나 돼지의 꼬리를 잘라버린다. 평생 정자만 제공하는 수컷과 제대로 몸을 풀기도 전에 다시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암컷 등 동물의 생태를 철저히 무시하고, 효율성만 강조하는 것이다.

똥과 오줌이 혼합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은 저항력이 약해지고 그만큼 질병 감염의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2005년 국내 생산 돼지의 총 폐사율은 28.9%. 공장형 축산 시스템은 이 열악한 사육 조건을 버티는 방법으로 항생제를 택했다. 과다한 항생제는 인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미국의 축산업 공장의 현장을 취재한 서해성 교수는 소가 공장에서 도축되고 해체된 후, 살코기 외의 뼈나 머리, 내장, 선지 따위의 부산물이 사료가 되어 동료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그 소들이 다시 고기가 되는 과정을 ‘저주받은 윤회’라고 표현했다. 서 교수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소들의 킬링필드’에서 광우병의 근원을 보았다고 한다.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에서 펴낸 ‘숨’ 겨울호에서 그는 “(미국 농장엔) 위생이란 건 없다. 우사조차 없다. 그렇다고 방목도 아니다. 소 8만5000마리가 한꺼번에 있는데, 철조망으로 구획된 곳에 빽빽하게 갇혀 있었다. 배설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소들이 달리 피할 곳이 없다. 그런 현장을 보고도 맘 편히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리프킨은 축산업자들은 정상 사료에 톱밥, 닭장이나 돼지우리의 분뇨, 산업 오수와 기름 등을 섞어 먹이고, 조만간 시멘트 가루도 사료 첨가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비육장의 비용을 줄이고, 소들의 체중을 더 빨리 불려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형 축산 시스템은 지구 파괴 주범
이뿐 아니라 대규모 축산은 식량 부족,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2가 소와 가축 사료에 사용되고 있지만 13억의 인구는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빈곤한 국가의 농토가 생계용 양식 곡물 생산에서 사료용 곡물 생산으로 전용됨으로써 자급자족적인 농민들은 농토를 잃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육류 섭취에 대한 인식도 달리지는 추세다. 서울 시내 한 대형 슈퍼마켓의 육류 매장에 고객들의 발길이 끊겨 썰렁한 모습이다. <김명민 기자>

특히 소 사육은 전 세계 온대지역의 토양 부식과 지구 사막화 확산, 열대 우림의 파괴,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공장형 축산 시스템의 확산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38%를 파괴했고, 아프리카는 과잉 목축으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또 축산 동물들이 배출하는 유기 노폐물은 지하수와 지표수에 스며들어 우물, 강 등을 오염시키고, 사육 과정에도 많은 물이 필요해 심각한 물 부족에 처한 나라가 늘고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지구 상에는 약 230억 마리의 가축이 사육되고 있는데 그 중 물소, 말, 노새, 당나귀, 낙타 등 약 3억 마리를 제외한 229억여 마리가 식용이다. 소는 닭, 오리 등 가금류에 비해 15배나 많은 사료를 소비한다.

돼지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옥수수 7㎏이 필요하고, 쇠고기는 무려 11㎏이 든다. 4.5㎏의 스테이크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용수는 한 가족이 1년 내내 사용하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 심지어 뉴스위크는 “450㎏ 황소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면 구축함도 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 1만 마리가 사육장에서 배출하는 유기 폐기물은 11만 인구의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과 같다.

이 때문에 소는 에너지 폭식자이며, 자동차로 치면 기름을 많이 먹는 캐딜락이다. ‘가축의 캐딜락’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리프킨은 수십억 명의 사람이 이처럼 방대한 양의 곡식을 가축에게 먹이느라 굶주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쇠고기를 즐겨 먹는 대가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육류 위주의 식탁 패러다임이 바뀐다
제러미 리프킨의 예견처럼 ‘육식의 종말’ 시대가 온 것일까.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넘어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 한복판까지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육류 기피 현상이 고조되고 있다. 네티즌은 채식 요령과 채식 전문식당 등의 정보를 열심히 퍼나르고 있다. 식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에 대한 탐식이 줄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2002년 8.4㎏으로 정점에 달한 뒤 계속 감소해 2006년에는 6.7㎏ 정도에 그쳤다. 웰빙 바람에 국산 쇠고기 가격이 크게 올라서이기도 하지만 육류 섭취를 기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방증도 된다.

광우병 논란과 맞물려 쇠고기 등 ‘육류’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열악하고 불안전한 축산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넘어 동물을 식탁에 올린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다. “육식의 중단은 소를 ‘비육장과 도살장에서의 고통과 모욕’에서, 그리고 ‘뿔 제거, 거세, 발정 억제, 호르몬 주입, 항생제 과다 복용, 살충제 살포, 자동화된 도살장의 해체 공정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상징적·실천적 의미를 지닌 인도적인 행위’다”라는 리프킨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 상 어떤 육식동물도 다른 동물을 평생 좁은 공간에 가둬 키우다 잡아먹지 않는다. 산업 시스템에 들어간 동물은 생명이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적어도 생명체를 이용해 상품을 만드는 일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육점에 깔끔하게 진열된 고기들. 붉은 조명을 받아 식욕을 돋우지만 우리는 그 고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열대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그 과정을 알거나 본다면 고기를 먹는 것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번쯤 스스로 되물을 일이다. 지글거리는 붉은 쇠고기 스테이크, 적당하게 익혀 육즙이 흘러나온 고깃덩이… 오늘도 밥상에 동물의 주검을 올리는 나는, 과연 행복한가?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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