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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저녁노을 - 도종환

푸른밤파란달 2020. 8. 17. 21:52

저녁노을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가을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을 물들이는 게
저무는 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구름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는 내 시가 당신의 얼굴 한 쪽을 물들이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시가 끝나면 곧 어둠이 밀려오고 그러면 그 시는 내 최후의 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내 시집은 그 때마다 당신을 향한
최후의 시집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떨었습니다

최후를 생각하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한 세기는 저물고
세상을 다 태울 것 같던 열정도 재가 되고 구름 그림자만
저무는 육신을 전송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스러져가는 몸이 빚어내는 선연한 열망 동살보다 더 찬란한 빛을 뿌리며
최후의 우리도 그렇게 저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무는 시간이 마지막까지 빛나는 시간이기를,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까지 맨몸으로도 찬연하기를,
  
 
 
 
 
+) 인디님의 어린왕자를 보고... 이 시가 생각남. 어린왕자에 비해 너무 어른의 시같지만... 
 
 
노을을 바라 볼때, 붉게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노을도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한줄기 남은 햇빛도 사라지고 완전히 어두워지기전의 어스름의 애매함...은 참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마치 영화가 끝나자 마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일어서는데 스크린엔 그 영화를 만든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단지 엔드 크레딧만을 위해 작곡된 음악이 흐를때의 기분 같은 것. 
 
나라도 지켜봐주고, 기억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두통작렬의 밤, 헛소리 집어치우고 잠이나 자야겠다. 쓸데없는 것들까지 담아두려니 머리가 아픈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