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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생명의 서(書) - 유치환

푸른밤파란달 2020. 7. 20. 19:31

 

생명의 서(書)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 (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 (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 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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