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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30일 섬진강 줄기 따라 쌍계사를 다녀와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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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30일 섬진강 줄기 따라 쌍계사를 다녀와서

푸른밤파란달 2020. 10. 14. 17:18

그동안 제대로 앉지를 못해서 미뤄왔던 쌍계사 여행기(라고 하기엔 좀...-.-;;)를 이제야 써본다.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여행을 갔다오면 갔다오기 전과 다른 인간이 된다. 그 영향이 좋든, 나쁘든 간에... 일주일,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벌써 퇴색된 기억들이 되버렸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친구와 간만에 떠나는 먼길이었다. 최근 몇년간 연애한다고 바빴던 친구인지라 얼굴도 오랜만에 보고 검게 염색한 머리가 앳되보인다고 칭찬 몇마디 해주니 벌써 기분이 좋은 친구.(단순하기는...-.-;;) 그러나 내 해골은 복잡하기만 했다. 섬진강 따라 꽃놀이가 원래 목적이었지만 어째된 인간인지 나는 꽃만 보러 그 멀리까지 가기엔 어쩐지 좀 손해보는 느낌이었다. 허나 약속은 약속이고, 또 약간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자고 결심한것. 산수유 마을이나 매화 마을 둘중에 하나만 가고 빠듯하게 움직이면 쌍계사와 화엄사 두곳을 돌아볼수 지도 모른다고 잔머리를 굴렸다. 
 

 

 

     
2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 하동 IC로 빠져 나왔다. 지도를 여러번 확대해서 가지고 갔었는데...친구가 나보다 더 심한 길치라서 늘 좌불안석. 곧 강을 왼쪽으로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룰루랄라 거리는 친구가 이상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사귀던 남자친구의 누나가 하동 살아서 한번 와봤던 길이란다. 그럼 그렇지. 그럼 나도 지도는 접어놓고 창밖 풍경을 열심히 본다. 섬진강! 김용택 시인의 시에서만 보던 그 강을 직접 눈으로 보니 강이 너무 좋다. 낙동강이나 한강처럼 그냥 '강'이 아니다. 섬진강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데, 그건 하나의 역사고 삶이라는 느낌이었다. 강 건너편은 광양시고, 강 이쪽은 하동군이다. 하동송림을 지나 조금더 가다가 강변에 조성해 놓은 공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강가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물은 더 없이 맑다.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유난히 많다. 참 보기 좋아보인다. 여행을 가서 그 지방의 유명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나는 층층이 도시락을 싸들고 돗자리 끼고 가는 그런 소풍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강이라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벤취에 앉아서 잠깐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 하는데 모자가 몇번이나 날린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산수유마을이냐 매화마을이냐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내 욕심대로 "쌍계사나..."라고 말을 꺼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친구는 아무래도 좋단다. 오케바리...-.-v 쌍계사 갔다가 시간 남으면 매화마을을 들르자...모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금 지나니 길 양쪽으로 끝없이 벚나무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차안에서  마구 셔터를 눌러대니 친구가 세차안해서 앞유리가 지저분하다고 그만 찍으라고 난리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플래쉬를 켜고 운전하는 친구 얼굴을 찍었다가 맞아죽을뻔 했다.

 

 

벚꽃이 반쯤 피었다. 아마 4월 5일쯤이면 절정이 될것 같은데, 그때는 길이 엄청 막혀서 짜증만 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그래도 길이 조금씩 막히기 시작해서 운전하는 친구도 벚꽃구경을 할수 있어 다행이었다. 쌍계사에 가까워 오니 정말 차가 많다. 커다랗게 쌍계사 주차장이라고 써진 표지판이 나왔지만 친구가 그냥 지나친다. 
            
나: 차 어디 댈려고? 주차장에 넣어야지?             
친구: 어? 엉?? 주차장?
나: 좀전에 지나왔자나...-.-;
친구: 못 봤는데...             

다행히 조금 더 가니 또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시키고 복잡한 길을 건너 쌍계사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전날에 아픈 다리쪽에 한방파스로 도배를 해놨는데도 걷는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약간 오르막인 길을 한참 가야 절이 나오는데 벌써 아픈 다리는 커녕 멀쩡한 쪽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게 몬일이다냐... 그래도 오기로 한번도 안쉬고 절까지 씩씩하게 걸어갔다. 
 

 

 


쌍계사 올라가는 입구의 장승이다. 옆의 커다란 바위에는 "쌍계"라고 새겨져 있는데, 장승과 바위 근처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진이 나올것 같지가 않아서 머리만 찍었다. "쌍계"라는 글씨는 최치원이 지팡이끝으로 쓴 글씨라고 전한다.             

 

 

           
쌍계사 일주문이다. 노란 잠바를 허리에 두르고 가는 아가씨가 친구다. 일주문을 찍을려고 하는데 안 기다리고 먼저 가더니 찍혀버렸다. 범어사 일주문에 비해 그 규모는 소박하지만 지붕의 화려한 공포장식이 위엄을 갖추었다. 현판에는 "삼신산 쌍계사"라고 적혀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 사이에 금강문이 하나 더 있다. 문수, 보현 동자를 모시고 있는데...문수동자는 사자를, 보현동자는 코끼리를 타고 있다. 최근에 색을 다시 입혔는지 그 색감이 싫어서 사진으로 남기진 않았다.  가본 절중에서 두 동자를 따로 모시고 있는걸 보기는 첨인것 같다. 천왕문을 지나면 팔영루를 지나게 된다. (부석사의 안양루처럼 누각으로 된 문이다.) 팔영루 앞에는 구층석탑이 있는데...삼층석탑에 익숙한 내 눈에는 왠지 어색하고 이국적으로 보였다.                

 

팔영루앞의 구층석탑 끄트머리가 보인다.

 

           

                                  
            
팔영루를 통과하면 정면에는 대웅전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박물관으로 가는 작은 돌다리가 있다. 박물관에 먼저 가서 여러가지 불화들과 괘불들을 구경했다. (사실은 다리가 너무 쑤셔서 그림은 보는듯 마는듯 의무감에 그냥 한바퀴 휘~ 돌았다.) 촬영이 금지 되어있었지만 별로 찍고 싶은것도 없었다. -.-;; 다시 팔영루를 돌아서 대웅전쪽으로 가니 대웅전 정면앞엔 보통 있기 마련인 석탑 대신에 왠 비석이 서있는 또 첨보는 광경을 보게 된다.
 

 

 

 

정면이 아니라 측면을 보고 있는 이 비석은 진성여왕 1년에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진감선사 부도비다. 1200여년 전의 비석이니 글씨는 거의 알아볼수 없고, 지금은 무심한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이나 되어줄 뿐이었다. 그늘에 앉아서 내 렌즈에 사람이 하나도 안 잡힐때까지 기다렸다. 그냥...그 천년이 넘은 돌덩이를 찍고 싶었을뿐이다.
 

 

 

 

            
부도비를 지나서 다시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마당으로 가면 또 신기한 물건과 마주치게 된다.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을 새겨놓은 것인데...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절에가도 이 건방진 중생은 부처님께 절을 하는 법이 없다. 절은 커녕 부처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부처님 웃으세요 하는 판이니...  다음번 절에 갈때는 불전함에 시주라도 하고 와야 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대웅전 왼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팔상전이 있는데, 마침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서 색색 연등을 달아놓아서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와는 한층 더 먼 느낌이었다. (하긴 휴일에...유명한 사찰에 와서 고요한 절집 분위기 찾는 내가 더 이상한거지...) 아픈 다리를 끌고 올라가다 보니 높이의 차이때문에 누각처럼 기둥만 서있는 지하공간(사실은 지하도 아니지만 위에서 보면 땅 아래니까...)에는 잘 말려놓은 씨래기가 줄줄이 걸려있다.

 

 

            
팔상전 앞에 이르니 역시 색색의 연등과 사람들때문에 그림이 망쳐치고 있었다. 팔상전에서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금당이 나오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차마 거긴 올라가지 못했다. 친구 혼자 올라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 잠깐 쉬면서 건너편 채마밭 뒤로 있는 목련 나무를 찍을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요즘은 삼각대를 거의 안 쓴다. 내공이 쌓였는지 그냥 찍어도 별로 흔들리지 않고, 삼각대 쓰면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카메라가 작은 탓에 사람들이 내가 사진 찍을려는지도 모르고 그 앞에서 자꾸 왔다갔다 한다. 그래, 아무도 얼쩡거리지 않을때까지 기다리지 모. 한참을 기다리고 나니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마침, 친구도 금당에서 내려왔길래 얼른 불러다가 목련나무 앞에 세웠다. 총알같이 셔터를 누르고 외쳤다.             

 

 


나: 이제 옆으로 비켜!!             
친구: 내가 쓰레기가?             
나: 저거 찍을려고 여태 기다렸단 말이야-.-                

        
바로 이 사진이다.  친구가 갔다온 금당에는 전각안에 탑이 하나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엥? 갑자기 무쟈게 궁금해졌지만,아픈 다리때문에 포기를 했다. 다시 대웅전앞을 지나서 팔영루 옆쪽으로 빠져 나왔다.                

 

 

 

            

측면에서 본 팔영루의 모습. 쌍계사 주춧돌의 대부분은 가공하지 않은 돌덩이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예쁜 모습은 아니지만 그게 더 정감있었다. 주춧돌 뿐만 아니라...기둥도 휘어지고 제멋대로인 나무몸통을 그대로 써서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그런 아기자기 한 것들이 내 눈길을 더 끈다. 특히...가끔 절집에서 감동받는 경우는 수양을 하는 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하고 작은곳에도 소박한 꾸밈을 아끼지 않을때이다. 평범한 문창살에 연꽃을 조각한다거나, 단순한 여밈쇠를 정교한 이중의 연꽃으로 만들어붙여 놓거나 돌계단의 측면에 연꽃무늬를 새겨놓는 그런것들. 화려하진 않지만 그 소박한 모습들이 너무 좋다. 그런것을 "정성"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 쌍계사에서 발견한 것은 담장의 모습이었다.                

                 

 

 

            

흙담에 기와장으로 꽃모양을 만들고 가운데는 깨진 사발조각을 박아넣었다. 단순하고 엄숙한 절집의 소박한 미소를 보는것 같지 않은가...             

 

 


시간을 벌써 2시를 넘어서고...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둘다 아침을 거르고, 차안에서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마신 탓에 사실은 아까부터 친구는 징징대고 있었다. 섬진강 참게장을 먹자고 노래를 부르더니 배고파서 그냥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자고 한다. 부도밭 조금 아래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가서 도토리 묵과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도토리묵은 덜 우려내서 그런지 쓴맛이 좀 났지만, 너무 배고파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벽에 기대어 앉으니 식당 뒷쪽의 계곡에서 나는 물소리가 너무 시원하게 들린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어라...-.-;;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또 혼자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5시까지 구례 화엄사를 가면 해가 많이 길어졌으니 한시간 정도는 절집구경을 하지 않을까...그러구 나면 섬진강 석양을 보고, 하동 시내에서 친구가 먹고 싶다는 참게장으로 저녁을 먹고 출발하면 차 안 막히는 시간에 고속도로를 탈수 있을것 같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친구에게 동자승 장식을 사줬다. 내것으로는 황토물을 들인 손수건을 샀는데 거기에 적힌 글귀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라는 말이다. 잊고 자시고 할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너무 맘에 들어서. 내것만 사기엔 좀 그래서 친구것도 하나 사줬다. 갖고 싶으면 저도 하나 사면 될걸 왜 내것을 빤히 쳐다보냔 말이지... -.-; 쌍계사 입구에서 팔고 있던 지리산 야생차 한봉지 사오고 싶었지만, 이미 보성에서 사온 입차도 반이나 남은 터라 다음을 기약했다. 자꾸 눈이 가는건 어쩔수 없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친구가 그런다. "이제 집으로 가는 거다" 순간 머리속에 있던 계획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화엄사도 안보고 가다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4시간 넘게 운전을 했고, 또 그만큼 운전해야 할 친구를 생각해보니 고집을 세울수가 없었다. 아침에 출발할때는 밤늦게까지 있다가 차 안 막힐때 돌아오자고 하더니. 그 시간이면 딱 차 막히기 시작할 때였다. 왔던길을 돌아서 화개장터 지나고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데 영 섭섭한 맘에 말문이 안 열린다. 서산으로 해가 점점 떨어지고 있고, 하얗던 섬진강 모래밭은 점점 황금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깐 차 세우고 석양이라도 보고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별로 말을 하고픈 기분이 아닌지라... 그냥 안타깝게 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섬진강을 따라내려가다가 옳다구나,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좋다 그럼...저기라도...!               
나: 저기나 한번 들렀다 가자.             
친구: 저기가 어딘데?             
나: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             
친구: 그래? 그럼 가보자.             

 

 


잠깐 시골길을 달려서 하동군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만든 최참판댁에 갔다. 원래부터 있던 곳이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곳을 복원해놓은 곳이다. 악양면 평사리... 작은 시골마을에 사과모양 가르등도 생기고 넓은 주차장도 생겼다. 동네 할머니들은 산에서 뜯어온 나물들을 골목에 내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시골마을 골목골목을 돌아 한참 위에 만들어진 최참판댁에 들렀다.                

                 

           

 

 


제법 그럴듯 하게 꾸며져있었다. 대청마루며, 정자며...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별당에는 연못까지 있고, 방안에는 놋쇠요강까지 갖춰놓은걸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제일 내 마음에 들었던것이 커다란 굴뚝. 강릉의 선교장에서 본것과 비슷했다. 정자에서 바라본 악양의 너른 들과 그 너머의 섬진강 푸른물...그 물을 따라 하얗게 피어있는 벚꽃...   

 

 

 

            
             

 

 

 

 

 

            
원경으로 찍은 사진은 썩 선명하지가 않아서. 다시 최참판댁을 나와서 섬진강따라 달렸다. 아침보다 더 벚꽃이 많이 핀것 같았다. 유럽에선 산모퉁이마다 포도밭이었는데, 지리산자락은 산모퉁이마다 야생차밭이다. 보성의 그 푸르고 윤기나는 차밭과는 뭔가 다른 그야말로 지리산틱한 야생의 차밭...                

                 

 

 

            
섬진강변은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붉은 빛이 완연할것 같은데 강둑에서 서로 껴앉고 석양을 기다리는 커플이 보였다. 부러버라...-.-;                

 

 

 

            

돌아오는 길에 역시나 길을 잃었다. 분명히 그 길이 맞는데 아닌것같다고 우기더니...엉뚱한 길로 빠졌다가, 우연히 다시 원래 길로 돌아왔다. 근데 친구는 다시 돌아간길이 처음 그 길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내가 몇마디 하니까 그제서야 눈치채고 한다는 말이... "너만 알고 있지 괜히 말해가지고 나까지 속상하게 만드냐?" 이런다. 역시나 진주-함안구간은 엄청 막혔고, 차안에서 지겹게 박혜경 노래를 들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쿵쿵 음악을 울리면서 따라불러재꼈다. 아마 먼지를 한바가지는 마셨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