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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病- 김혜순

푸른밤파란달 2020. 9. 13. 03:56

 

 

그대가 답장을 보내왔다
아니다 그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답장을 읽는다
病은 답장이다
 
 
(그대가 이 몸 속에 떨어져 한 번 더
살겠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뜨거운 실핏줄 줄기를 확,
뻗치는구나 견딘다는 게 病드는 거구나)  
 
     
내 피부에 이끼가 돋는가 보다
가려움증이 또 도진다
내 사지에서 줄기가 뻗치는지
스멀스멀한다
온몸 위로 뜨거운 개미들이
쏘다닌다  
 
 
그대가 또 시도때도없이
가지를 확 뻗친다
내 손가락이, 네게 닿고 싶은 내 손가락이
한정 없이 한정 없이 늘어난다
이 손가락 언제 다 접어서 옷소매 속에 감출까?
몸 속에는
너무 익어 이제는 터져버리는 일밖에 없을
홍시들
울 듯 말 듯
 
 
오늘밤 벌써
내 얼굴 밖으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는 또 젖은 흙처럼
이부자리에 확 쏟아져버린다


 - 김혜순, '病' 
 
 
+) 시의 첫 연만 인용된 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전문을 찾아보니 뭔가 좀 아스트랄하다. 이럴때가 참 난감한데, 지난친 상상력과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가 빵! 그렇다고 일부만 좋아할수 없고 말이다.(뭐든 세트로, 완전체로 소유!하고 싶다.) 
 
하루종일, 곧 쏟아질듯한 표정을 하고는 비는 안오고 덥기만 하다.습기를 잔뜩 머금은 고온의 공기가 주는 불쾌함. 어서 가을이 왔으면... 
 
왜, 봄,가을은 짧기만 한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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