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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위로엔 공짜가 없다 - 이응준 (소설가) 본문
위로엔 공짜가 없다
청춘을 위로한다는 착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지난 한 해였다. 여전한 그 추세의 원점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한계와 모순에 의해 상처받고 좌절하는 것에 대한 기성세대의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는 듯싶다. 만성 불황과 전망 부재에 허덕이는 출판시장이 모처럼 청년 독자들을 숙주 삼아 발화시킨 신드롬이니만큼 그 내부를 잠시 좀 냉정하게 성찰해보는 것이 아주 무의미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착한 책들을 컵밥에 찰랑이는 피 같은 돈으로 사서 읽은 그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한데, 왜냐하면 바로 그 위로라는 것의 본색과 그 언저리가 어쩐지 석연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좋은 책이 있고 나쁜 책도 있으며 그러한 기계적 분류 자체를 스스로 재수 없어 하는 별의별 책들 또한 다 있을 것이다. 심지어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는 완전히 무시한 채 독법과 독자의 입장만을 인정하는 비평이론조차 학문적으로는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어느덧 중년 소설가인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고달픈 젊은이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다. 청춘을 대놓고 위로하는 그런 책들은 앞으로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견해임을 전제하는 바이지만, 젊은이들을 향한 내 이 마음은 충정에 가깝다. 『부자가 되는 법』이란 책이 있다고 치자. 『부자가 되는 법』을 달달 외워서 부자가 된 사람이 있는가? 『부자가 되는 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부자가 되는 법』을 써서 엄청 팔아먹은 그 사람이지 『부자가 되는 법』을 사서 밑줄 그으며 읽은 누군가가 아니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전문용어로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제 내 발로 멀리 뛰어간 게 맞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보면 결국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아까 꿀꺽 삼켰을 적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는데 웬걸, 한 치도 나아진 게 없는 것. 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막상 갈 곳이 없다. 왜냐. 그 위로가 유통되는 시스템에는 그 위로를 제작한 당사자들조차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묻는다. 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가? 기운 차리게 해서 또 편의점에서 부려먹으려고? 이 도깨비놀음의 정점에 빅 브러더가 존재해 갑과 을을 조종하고 있다면 차라리 덜 끔찍할 것인데, 안 됐지만 시스템에는 시스템과 노예밖엔 없다. 게다가 막말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사실 위로는 백설탕처럼 달 뿐 인생을 당뇨에 걸리게 한다. 이유 없이 돈을 받았다면 경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기하게 위로받았다면 의심해야 한다. 백 번 양보해 그 위로라는 것을 순수하다고 가정하더라도, 고통은 위로받는다고 절대로 감소되지 않는다. 고통은 고통의 원인을 밝혀 그것을 제거했을 때에야 비로소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괴로움은 우리에게 위로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이것은 무지한 나의 말이 아니다. 2500년 전에 너무 괴로워서 깨달아버린 부처님 말씀이다. 이제는 이 사회라는 시스템이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위로까지 기획해서 편집하고 포장한 다음 과장 광고까지 해서 장사해먹고 있으니, 과연 큰 도둑은 성인(聖人)인 체하는 법이다.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을 얼굴도 없는 시스템에 마케팅 당하지 마라. ‘무식한 욕은 도리어 굶어 죽는 혼에게 떡이 될 수 있지만, 발라맞추는 간사한 위로는 칼보다도 더 아프게 생명을 갉아냅니다’라고 함석헌 선생은 썼다.
동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어서 슬픈 것이 아니다. 청춘은 신에게 기도하듯 자신의 적이 무엇인지 명백히 알아야 한다. 괴롭지만 소중한 내 가슴 속의 이 지옥이 무엇인지,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꿈을 키우듯 자신의 숭고한 적을 하루하루 키우며 뼈아픈 패배 속에서도 늠름한 승리보다 더 강한 것을 배워 성장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적이라 함은 무슨 정치적 적이니 세대 간의 갈등이니 하는 그런 유치한 나부랭이들이 아니다. 지옥이라니까 죽어서 떨어지는 불구덩이 속이 아니다. 자기의 고뇌를 상세히 보는 것만이 자기의 마음을 위로하는 수단이다, 라고 말한 것은 스탕달이다. 한 사회와 한 국가를 넘어서 언제나 이 세계는 고통 받는 청춘의 투쟁 속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고 활로를 찾아왔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도리어 위로받아온 것이 이 세계였다. 역사이고 문화였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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