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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생강

푸른밤파란달 2020. 11. 18. 01:52

11월이면 햇 생강이 나기 시작한다. 작년에도 이 맘때쯤, 생강을 대량으로 살까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강값이 오르고, 상태도 좋지 않아서 조금씩 사다가 생강차를 만들었더랬다. 햇 생강은 껍질이 얇아서 숟가락으로 대충 슥슥 긁으면 금방 노란 속살이 드러나는데, 조금 지나면 겉껍질은 고생한 노인의 손등처럼 쭈그렁해지고 두꺼워진다.(물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올해도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3kg을 주문했다. 생강이라는 것이 요리에 대량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없어도 그만이고, 또 꼭 없을때만 쓸일이 생기기도 하기에 얇게 져며서 말려놓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편강도 만들어 볼까 하고 겁없이 주문했는데, 씻으려고 쏟아놓고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다.

 

 

 

어렸을때는 생강맛이 참 싫었다. 대체로 맛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뭐가 맛이 있는건지도 구분을 잘 못하지만 유독 싫어하는 맛에는 예민 하기 마련인지 김치에 조금 든 생강의 맛을 대번에 알아내곤 했다. 어머니는 나의 어떤 요구나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 아니어서 결국은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김치에 생강을 넣지 말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독립을 하고, 생강의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온갖 방법으로 생강차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생강차를 끓이고 난 생강을 갈아서 생강파운드를 굽기도 했다. 어느 해는, 겨울을 앞두고 임신을 했던 직장동료를 위해 편강을 만들기도 했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어서 한번 내 손으로 만들어 본것에 만족하고 다시는 만들지 말아야지 했다. 혹시 임산부가 감기라도 걸릴까 애써 만든 편강이었지만, 몸에 좋은것은 다 싫어라 하는 그 임산부가 그걸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편강을 만든지 10년쯤 되었으니, 다시 한번 만들까했다. 모두 쏟아놓고 보니 스텐리스 양푼으로 두 개 가득이다. 생강을 주문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면서 생강을 까기 시작했다. 싸구려 차스푼처럼 마감이 날카로운 숟가락이 좋다. 과일칼은 남은 줄기를 다듬는데 필요하다. 모조리 껍질을 까고 나면 슬라이서로 얇게 저민다. 이때 손가락도 같이 저며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슬라이스하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얼마 안되는것 같아, 편강은 포기하고 일부는 말리고, 일부는 채로 썰었다. 지난한 작업이었고, 채로 썰어놓고 보니 또 너무 많은 것같은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_-;

 

 

이제 꿀과 설탕에 버무려 놓았다가, 적당한 병에 옮겨 담으면 된다. 편으로 슬라이스 해놓은 생강은 식품 건조기를 돌리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밥값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