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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등잔 - 도종환

푸른밤파란달 2020. 6. 25. 20:20

등잔 /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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