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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일보] 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푸른밤파란달 2020. 9. 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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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추일한묘(18세기, 비단에 채색, 30.5×20.8㎝,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겸재 정선의 ‘추일한묘’ 미물과 어우러진 들국화

반드럽고 갖가지 자태 뽐내

고양이 입매엔 장난기 감돌고 지나가는 방아깨비 새삼스러워
 


국화는 개화시기에 따라 춘국·하국·추국·동국이 골고루 있다. 추국(秋菊)은 구시월에 피는 꽃이고 이 무렵을 ‘국월(菊月)’이라 부르니, 국화는 가을 정취를 보란 듯 독과점한다.

품종은 셀 수도 없다. 그중에 옛 문사와 화가들이 아낀 국화는 고이 기른 집안 명품이 아니다. 들판에서 멋대로 자란 야국이었다. 내버려둬도 빼어난 것을 일러 ‘야일(野逸)’이라 하는데, 국화주깨나 마신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 울타리에 심은 국화도 건너편 남산 비탈에서 캐옴 직한 것이라 일취(逸趣)가 살아났다.

서늘바람 부는 가을과 벌판에 핀 국화는 이래저래 사개가 맞는다. 무서리에도 꽃잎을 보듬는 국화는 도연명처럼 숨은 선비에 비유된다. 은일과 절개는 국화의 클리셰(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고 국화를 그린 그림이 오로지 적막한 심사를 돋우는 건 아니다.

다른 소재와 곁들여 다정한 우의를 연출하는 작품이 꽤 많다. 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모처럼 딴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그가 그린 ‘추일한묘(秋日閑猫)’를 보라. 미물과 짝지은 국화꽃 연가가 자냥스럽다.

꽃은 들국화요, 고양이는 길냥이다. 국화는 연자줏빛 낯빛이 반드럽다. 한뿌리에서 돋아나 두가닥으로 뻗은 줄기는 튼실하다. 덜 피거나 활짝 핀 꽃들이 예쁜 짓을 골라서 한다.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뽐내거나 앵돌아서는 갖가지 자태로 눈을 끌어당긴다.

세송이 넘는 꽃을 그릴 때 크기와 방향을 달리해 서로 미소 짓듯 배열하는 것이 국화를 그리는 옛 양식이다. 겸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농익은 붓놀림은 서정성이 모름지기 사실성에서 온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문인화가는 덜 된 국화를 그려놓고 너볏한 척 떠벌렸지만, 겸재는 헛바람 든 화가가 아니다. 그의 국화꽃에 코를 대면 향기가 오련하다.

털갈이를 마친 고양이는 윤기 나고 폭신하다. 터럭을 곧이곧대로 그리지 않고 부티 나는 양감을 되살리는 데 공들였다. 표정이 시쳇말로 죽여준다. 노란 홍채 안에 풀씨 같은 동공이 또렷하지만 모질거나 사납지 않다. 외로 돌린 고개, 곱다시 쳐다보는 시선, 실낱 같은 입매에서 장난기가 감돈다. 지나가는 방아깨비의 더듬이와 뒷다리도 새삼스럽다. 적대시 않는 고양이의 꼬리는 느슨한데 이 녀석은 제풀에 빳빳해졌다. 평온한 가을날에 때아닌 싸움질을 하겠는가. 화심에 날아든 벌도 날갯짓을 멈춘다.

겸재는 고양이를 빼고 괴석을 넣은 같은 주제의 수묵화도 그린 바 있다. 풀벌레가 동무해주는 국화 그림은 그저 장식용에 그치지 않는다. 화가가 똑같이 자주 그렸을 때는 숨은 뜻이 있었다. 살뜰한 기복(祈福)이 깃든 것이다.

옛 화가의 수수께끼 놀이는 좀 별나다. 국화는 은거, 고양이는 칠순 나이와 통한단다. 벌은 벼슬살이, 방아깨비는 다산으로 넘겨짚기도 한다. 겸재는 국화 그림으로 보는 이의 장수와 호강을 두루 빌어준 셈이다.

국화꽃 지천인 가을이 와도 시기는 위급하고 세상은 난리다. 그림치레일망정 빌어준 마음씨가 갸륵하니 보면서 기운 차리자.


손철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