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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동주야 - 문익환

푸른밤파란달 2020. 7. 17. 20:46

동주야 
 
너는 스물 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꾸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그 앞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습작기 작품이 된단들
그게 어떻단 말이냐
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
예수보다 더 젊은 영원으로 
 
동주야
난 결코 널 형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니 
 
고 문익환 <동주야>  [ 두하늘 한하늘(창비시선75)]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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