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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희생을 거절한다 본문
누가 희생되는가. 국가가 희생을 말할 때는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이들만 희생을 강요당할 때 희생은 미덕도 의무도 아니다. 말합시다, 이제 희생당하지 않겠다고.
“전쟁이 터질 경우 10시간 안에 다음 순번에 따라 최전선에 일개 병사로 파견된다. 첫째로 국가원수. 두 번째는 국가원수의 친족. 세 번째는 총리·국무위원·각 부처 차관. 네 번째는 국회의원. 다만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종교계 지도자들.”
20세기 초 덴마크의 한 군인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쟁절멸보장’ 법안이다. 전쟁을 없애는 법이라지만 그 어디에도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오직 전쟁을 결정한 이들이 전쟁의 가장 앞자리에 서라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병사들의 죽음은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 미화되지만, 정작 높은 곳에서 전쟁을 명령한 이들은 그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는 구조.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덴마크 군인은 바로 이 구조가 전쟁의 본질이며, 이 구조만 깰 수 있다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비판적 지성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를 받아서 핵 발전에 적용한다. 원전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관료·교수·사업자, 이 핵 마피아들이 사고가 날 경우 가장 먼저 ‘결사대’로 원자로에 파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 발전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떠들어대던 자들은 과연 사고가 터졌을 때 현장에 가서 수습을 할까?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 그 한복판으로 들어갔던 이들 중 상당수는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였다. 잘난 척하던 핵 마피아들은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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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차가 지나가는데, 사마귀 깔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묻는 국가 앞에서 희생은 국민의 의무이자 미덕이었다. 국가가 모든 걸 압도해왔던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더는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처절하게 이어지고 있다. 밀양이다. 평생을 살아왔던 곳에 24시간 치익치익 소리를 내는 고압 송전선과 40층 높이의 송전탑이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밀양 노인들이 싸운다. “오직 이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절규한다.
한국전력과 정부는 765kV 고압 송전선로 인근에서 백혈병 발병률이 몇 배 높아진다는 등의 우려는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일축한다. 그럼 전압을 낮춰 안전하게 땅 속으로 선로를 묻는 지중화 방식으로 하면 어떠냐 했더니 그건 비용이 많이 들어서 힘들단다. 희생의 강요다. 원전을 더 지어야 하고, 거기서 나온 전기를 저 멀리 휘황찬란한 도시에 나르려면 시골 노인네들은 참으라는 이야기다. 전쟁과 같은 논리다. 대신 죽으라는 것이다.
가장 약자를 몰아세워놓고 ‘님비’라고 손가락질할 것인가
희생을 말하는 이들은 ‘누가 희생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단 한 번도 그 자신은 희생되지 않았음이, 늘 가장 취약한 이들만 희생의 대상이 되어왔음이 밝혀지는 순간, 희생의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님비(NIMBY)라는 것을 이기주의라 배웠다.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가 혐오하는 것이라면 그걸 줄이고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렵고 당장 돈이 많이 든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게 염치 있는 사회이고, 제대로 된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혐오스러운 것은 가장 약한 이들에게 몰아넣고 모른 척했다. 님비라 욕하고, 보상금 때문에 저런다고 손가락질했다.
밀양 노인들은 송전탑을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지으라고 하지 않는다. 원전을 가동해서 그 전력을 고압 송전선으로 기어이 보내야만 하느냐고, 결국 누군가의 터전이 희생되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 아무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 모두가 희생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밀양의 노인들은 힘겹게 그 시작점을 지키고 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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