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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다정도 병인양 - 이현승

푸른밤파란달 2020. 6. 25. 20:25

 

다정도 병인 양

 

이현승 

 

 

왼 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자살기도자처럼

우리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려 놓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가처럼*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시작해 보나마나 뻔한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서른 두 살의 주인공에게도

울분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밤낮없이 꽃등을 내단 봄 나무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눈물과 콧물과 침을 섞으면서 오열할 구석이,

엎드린 등을 쓸어줄 어둠이 필요하다.

 

왼손에게 오른손이 필요한 것처럼

오른손에게 왼손이 필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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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괜찮아 너는 아직 서른둘일 뿐이야. 그리고 그건 서른셋보다는 적지.”

 

 

 

『 현대시학 』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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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1996년 〈전남일보〉,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