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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看書癡)

종이에 대한 예의

푸른밤파란달 2020. 9. 13. 03:41

데스크 칼럼: 종이에 대한 예의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종이가 떴다. 이 찬란한 디지털시대에. ‘종이회사’ 덕이다. 사실 종이라는 건 형체가 가장 분명한 물질이다. 그러니 ‘전자’와 대비를 이루지 않는가. 그런데 실체 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종이회사’라고 부른다.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종이회사’ 논란을 일으킨 이들 가운데는 출판사 시공사의 전재국(54) 대표도 끼어 있다. 종이로 책을 만들어 업계 5위 안에 들어온 이다. 그에게 종이는 대체 뭔가.  
 
종이가 정말 뜬 건 이곳이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이 장장 6개월에 걸쳐 열고 있는 ‘슈타이들’ 전. 전시는 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출판거장 게르하르트 슈타이들(63)의 평생 작업을 옮겨놨다. 독일 괴팅겐 출신의 슈타이들은 열일곱 살부터 독학으로 습득한 인쇄기술로 출판업을 시작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책과 종이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변한 학력이나 자격도 없이 일궈낸 그의 출판사에는 사진·회화·문학 등에서 날고 긴다는 저작자들이 줄을 서서 낙점을 기다린다. 슈타이들도 그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시각·후각·촉각 등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그들의 콘텐츠를 담아낼 종이부터 골라낸다.  
 
책 한 권을 만들 때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종이다. 비용에서도 그렇고 형태 구성에서도 그렇다. 출판전쟁이 종이전쟁인 때가 왕왕 있다. 2년 전쯤엔 이런 일이 있었다. 소설책 본문에 간혹 쓰이는 ‘이라이트’라는 종이가 갑자기 품귀를 빚은 것. 원인을 수소문해 보니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서 영어 번역본이 나온 여파로 국내서 다시 붐이 일자 급하게 20만부 추가인쇄에 들어갔던 터다.  
 
하지만 재생지 느낌을 주는 두툼한 부피의 이 종이를 국내선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이유는 ‘독자들이 찾지 않는다’다. 국내 출판물에 가장 흔하게 쓰는 종이는 미색모조지. 반질한 질감에 컬러·흑백 인쇄가 무난하며 비침이 덜하고 변색이 없다. 하지만 흔한 것이 싼 것은 아니다. 이 역시 고급지에 속한다. 미색모조지에 들어가는 펄프 외의 재료는 돌가루. 국내서 출판되는 책이 보통의 외국서적보다 무거운 건 이 때문이다. ‘단행본=미색모조지’의 공식은 한국출판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비단 본문종이뿐이겠는가. 서점에 한번 나가 보라. 화려한 디자인에 은박·금박으로 치장된 표지까지 책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단언컨대 책을 한 권 산다면 같은 비용을 들여 얻을 수 있는 값어치 중 최대를 뽑을 수 있다.  
 
그래 다 좋다. 지식의 보고를 잘 만들어내려는 의도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문제는 모든 책이 다 지식의 보고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고급스러운 종이에 얹을 만큼 내용까지 고급스러우냐는 거다. 지난해 출간된 새 책은 8690만여부. 3만 9767종의 책을 평균 273페이지로 2185부씩 찍어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건져낼 책이 몇 권이나 되겠는가. 책 내는 일이 정말 쉬운 일이 됐는지 ‘진정 이것이 책일 수 있는가’ 싶은 함량 미달의 콘텐츠는 홍수를 이룬다.  
 
만약 당장 이사를 해야 한다고 치자. 사정상 버려야 하는 책을 추려야 한다. 그때 차마 못 빼내고 주저하게 하는 책이 있다면 결코 외관 때문이 아닐 거다. 한때 뼛속까지 흔들어놨던 그 내면 때문이다. 물론 출판할 수 있는 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필터링은 필요하다. 이는 저자 자신과 함께 출판사의 제1역할이 돼야 한다. ‘세상에 반드시 남겨야 할 단 한 권’이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저 팔릴 건가 아닌가의 잣대만 들이댈 일이 아니다.  
 
슈타이들이 인정을 받은 건 결국 ‘종이에 누가 되지 않게’ 선별한 콘텐츠에 있다. 그의 숙연한 작업 앞에 미술관은 한 사진작가의 말을 인용, 선언처럼 내걸었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종이든 사람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깊이 품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  링크를 클릭하는 것이 나도 사실 좀 귀찮아서 안해지길래 본문을 긁어 옴. 길어서 다 보일지 걱정이지만...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49686602842704&mediaCodeNo=257

 

[데스크칼럼] 종이에 대한 예의

종이가 떴다. 이 찬란한 디지털시대에. ‘종이회사’ 덕이다. 사실 종이라는 건 형체가 가장 분명한 물질이다. 그러니 ‘전자’와 대비를 이루지 않는가. 그런데 실체 없이 서류로만 존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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