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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주는 시 - 류근

푸른밤파란달 2020. 9. 27. 01:46

나에게 주는 시
   
                          류근 
 
우산을 접어버리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 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나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하루종일 심란한데 류근시인의 페북 보고 빵 터졌다. 아저씨 유쾌하시네. 한때 좋아했던 티비 프로 역사저널 그날 에서 처음 알게된 류근 시인은 나에겐 그냥 소개자막만 시인이었다. 어느날 다른 자료 찾다가 우연히 본 시가 마음에 들어보니 류근이란 이름이 나와서 그 아저씨가 이런시를 썼구나 놀란 적이 있다. 
 
사랑타령은 노래든, 영화든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날 문득 사람 사는 일에 사랑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일일진데 너무 무시했다는 생각에 이제는 사랑도 일상다반사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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